[기고] 법원본부 김용국 고양지부장(판결 vs 판결 저자)

김영란법, 밥값 3만원 5만원 논쟁할 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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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본부 김용국 고양지부장
▲ 법원본부 김용국 고양지부장

내연관계였던 변호사 A(남)와 검사 B(여)가 있었다. A는 B를 위해 아파트 보증금을 대신 내주고 선물공세를 하면서 환심을 샀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B에게 수사 중인 사건을 청탁했고, B는 담당 검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부탁까지 했다. 그 무렵 A는 B에게 외제 승용차와 신용카드를 제공했고, B는 A에게 명품백 값을 달라고까지 요구한다.

2011년 이른바 벤츠여검사 사건이다. 여론은 들끓었고 검찰은 B검사의 엄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법원까지 간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법원이 ‘청탁은 있었지만 대가는 없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청탁과 대가가 동시에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하다는 법과 판례 때문에 B 검사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다.

언론은 하루빨리 법을 고쳐서 법과 현실의 괴리를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결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 원안이 2015년 3월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선 되레 불만을 표출한다. 크게 2가지인데 법 적용대상자인 ‘공직자 등’에 언론인을 포함시킨 부분과 이른바 ‘3·5·10 조항’(음식물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 상한선 조항) 때문이다.

벤츠여검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강력한 법을 만들어 부정한 청탁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하던 언론사들은 정작 법 시행일이 다가오자 검찰의 표적수사와 법 오남용 우려를 제기한다. 게다가 언론의 자유가 침해된다거나 처벌기준이 모호하다는 주장을 펴면서 여전히 위헌성을 거론한다. 헌법재판소는 얼마 전 “교육계와 언론계에 부정청탁이나 금품 등 수수 관행이 오랫동안 만연해 왔고 크게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각종 여론조사결과와 국민 인식 등에 비추어 볼 때, 교육계와 언론계의 자정노력에만 맡길 수 없다는 입법자의 결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익보다 부정청탁금지조항이 추구하는 공익이 더 크다고 일축했다.

다음으로, 일부 언론에선 ‘3·5·10 조항’이 김영란법의 핵심쟁점인 것처럼 거론하면서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아주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 김영란법의 핵심골자는 ‘부정청탁의 금지’와 ‘금품 등의 수수금지’다. 즉 금전이 오가지 않더라도 부정청탁 자체에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고, 대가성 없는 금품·향응도 일정 금액 이상이면 처벌하겠다는 취지다.

금품수수 금지조항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①공직자와 기자 등은 직무와 관련 있으면 대가성이 없더라도 금품·향응·접대 자체를 받아서는 안 된다 ②직무와 관련 없더라도 어떤 명목이든지 동일인에게 1회 1백만 원, 연간 3백만 원을 넘는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 대상이다.

다만, ①이나 ②에 해당하더라도 예외적으로 △외부 강의료 △직장 상급자의 위로·포상금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또는 부조목적의 음식물·경조사비·선물 등은 허용하도록 했다. 이중 음식물·경조사비·선물은 대통령령으로 3·5·10만원의 상한선을 두고 있다. 원칙적으로 금품이나 접대를 받아서는 안 되지만, 사회상규상 불가피한 상황에서 용인할 수 있는 한도인 셈이다.

이 조항을 “3만 원짜리 밥, 10만 원짜리 선물까지는 받아먹어도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기본 취지는 금품수수금지다. 1만 원이건 2만 원이건 공무원이든 기자든 각자 자기 돈으로 밥을 먹으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연일 축산업·화훼업 타격, 골프회원권 폭락 등의 기사로 이 조항을 무력화시키거나 상한선을 올리려고 부추기는 언론의 태도는 기존의 그릇된 관행 자체를 접으려는 뜻이 있는지 의심케 한다. 아예 접대문화를 청산하려고 작정한다면 5만 원이냐, 10만 원이냐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지금은 아주 엄격한 잣대로 청탁의 고리를 끊지 않고서는 부정부패를 잡을 수 없고, 부정부패를 잡지 않으면 국가의 불신도 바로잡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공무원과 기자는 깨끗합니까?” 이 질문에 일반 시민들의 긍정적인 답변을 들으려면 일단 김영란법은 잘 정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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