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노래] ⑤바위처럼

‘바위처럼’의 노랫말처럼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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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들에게 보다 많은 민중가요를 소개하고, 그 배경과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함께 고민해 보기 위해 매월 <공무원U신문>을 통해 <이달의 노래>를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월별로 꼭 기억해야 할 일을 중심으로 선곡하고 노래를 소개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람에 흔들리는 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 있으리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
마침내 올 해방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한낮의 폭염이 온 민중의 시름을 더 깊게 했던 8월이 지나가고 이제 9월이 온다. 시간의 흐름은 어쩌면 이렇게 자연스럽고도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가을이 오는 소리는 언제라도 기쁜 일이다.

공무원노조 14년 역사 속에 손에 꼽을 수 있는 일 중에 하나는 2006년 9월 22일 전국적으로 단행되었던 공무원노조 사무실 폐쇄에 맞선 가열찬 투쟁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 지부 사무실은 단순히 공간의 문제를 넘어 공무원노조 사수의 문제였고, 공무원노동자들의 자존심과 생명과도 같은 문제였다. 따라서 행자부의 사무실 폐쇄 지침에 맞서 전국 각지의 투쟁은 힘차게 진행되었다. 쇠사슬을 온몸에 묶고 사무실을 지키는 지부도 있었고,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 사무실 사수투쟁에 집중하는 지부들도 있었으며, 또 어느 지부에서는 조합원을 수백명 조직하여 지부 사무실로 통하는 계단을 모두 통제하면서 ‘인간 방패’를 만들어 사무실을 지키기도 했다. 공권력을 동원한 정부는 공무원노조 사무실을 폐쇄하기 위해 온갖 물리력을 동원하였고, 건물 밖으로 뛰어내릴 수 있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에어매트를 준비하며 강제폐쇄를 단행했다.

 
 

결국 며칠동안 전개한 치열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전국 대부분의 지부 사무실이 강제 폐쇄되고 만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할 공무원노조였다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으리라.

정말 뚝심 있는 공무원노동자의 근성으로, ‘바위처럼’ 굳건한 마음으로 공무원노조 사수, 민주노조 쟁취를 위한 투쟁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바로 각 구청, 시청, 군청 앞마당에 컨테이너 박스와 천막을 이용하여 임시 지부사무실을 설치하고 투쟁에 돌입한 것.

혼자 하는 싸움이 아니라 같이 하는 투쟁이었기에 의미는 더했고, 하나로 힘을 모아낼 수 있었다. 곧 사무실은 정상화되고 공무원노조 활동은 인정받아 나갔다.

‘포기를 모르고 함께 투쟁’할 때 그 정당성은 반드시 인정받을 수밖에 없음을 우리 스스로 확인한 것이다. 물론 지금도 법외노조 운운하며 자주 사무실 폐쇄 협박을 하지만 강력한 투쟁을 경험해 온 우리는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바위처럼, 흔들리거나 좌절하지 않고, 굳건히 우리의 길을 갈 뿐이다.

 
 

민중가요 ‘바위처럼’을 부르면 언제나 2006년 9월 22일이 생각난다.

‘바위처럼’의 가사가 말해 주듯, 이 노래가 희망을 주고 힘을 주는 노래, 절대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끝까지 함께 갈 것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민중가요 역사를 살펴보자면, 1994년 꽃다지 1집앨범 [민들레처럼]에 수록된 ‘바위처럼’은 발표되자마자 운동진영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7~80년대 기존 투쟁현장에서 불리는 민중가요는 외국에서 들여온 민요나 저항가요에 우리글을 차용하여 번안한 곡들로 박수치며 부르는 곡들이 많았고, 70년대 후반 김민기를 필두로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노래들이 대중들의 정서를 감동시켰다. 또한 80년대 혜성처럼 등장한 작곡가 김호철을 통해 4/4박자 행진곡풍의 투쟁가들은 집회대오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인 역할을 했다.

직접적이고 사실적 표현을 통해 투쟁을 결집하고자 했거나,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여 끝까지 함께 갈 것을 호소하는 민중가요의 방식에서 ‘바위처럼’의 등장은 당연히 놀라운 것이었다. 발랄하고 경쾌한 멜로디에 여태껏 한번도 없었던 정형화된 율동을 가미한 ‘바위처럼’은 기존 운동권 선배들에게 가장 큰 충격거리였다고 한다. 당시 선배들의 얘기를 들어보자면 대체로 ‘운동권에도 말세가 왔다.’는 식의 부정적인 평가가 대세였다고 한다.

 
 

그러나 ‘응답하라 1994’에서도 나왔듯이,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이 ‘바위처럼’의 노래에 맞춰 군무를 추면서 일체감을 형성하게 되었으니, 실로 ‘바위처럼’의 탄생은 놀라운 변화였고 시도였다. 투쟁가에 맞춰 심각하고 진지한 투쟁을 하던 날은 ‘바위처럼’ 같은 발랄하고 경쾌한 노래의 등장으로 즐겁고 재미있는 집회 문화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매주 수요일 12시에 열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의 메인 곡이 바로 ‘바위처럼’이다. 지금 40대가 된 사람들이 처음으로 춤추며 불렀던 그 율동과 노래가 지금 20년이 더 지난 오늘, 10대의 학생들이 이어받은 것이다.)

‘노래만큼 살자’는 말이 있다. 노랫말에 나오는 의미를 새기고 사람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나는 다가오는 9월을 맞이하면서 ‘바위처럼’의 노랫말처럼 살아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가진 굳센 공무원노동자들의 뚝심을 보여주자. 이런 우리의 기개가 공무원노조 사수, 성과퇴출제 저지의 큰 밑거름이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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