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 칼럼]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을 지켜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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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더위가 곧 수그러들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와는 달리 8월말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다. 7월말부터 시작되어 8월 내내 언론지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도 이제는 ‘전기요금 개편을 위한 당정 태스크포스(TF)’ 활동으로 관심의 중심축이 점차 옮겨가고 있지만, 하나둘씩 발부되고 있는 전기요금 고지서는 전기요금이 어떻게 개편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용, 가정용, 상업 및 공공 부문이 비슷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일반적인 전력소비 행태와는 달리, 한국은 전체 전력소비에서 산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53.3%(2014년 기준)에 달했지만, 가정 부문의 비중은 12.9%에 그쳤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가정의 전력소비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가정용 전기요금에만 누진제 단계 6구간에 누진율이 최대 11.7배에 달하는 징벌적 누진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논의를 집중하였다.

아마 폭염이 한풀 꺾이는 9월이 되면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도 잠잠해질 것이다. 물론 전기요금 개편 TF에서 대책이 나오겠지만, 전력 민영화 추진론자들이 포진한 TF에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리 없다. 오히려 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하겠다는 명분으로 전력요금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겠다고 하면서, 공공기관 기능조정의 탈을 쓴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지나 않을지 염려해야 할 판이다. 따라서 전향적인 논의를 위해 전기요금 개편과 관련한 몇 가지를 짚고자 한다.

누진제 완화 명분으로 공공기관 민영화 정책 추진할 우려

첫째, 정부는 당초 가정용에만 적용되는 누진제 폐지 혹은 완화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대해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바로 입장을 번복하여 7-9월 한시적으로 주택용 전기요금을 깎아주기로 했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도입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현실과는 맞지 않는 만큼 이를 개편하라는 요구는 적절하다. 하지만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이 가진 문제 또한 간과되어선 안 된다.

우선적으로 에어컨도 없이 고통받고 있는 저소득층 가구에 대한 긴급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그런 대책이 마련되더라도 수혜대상이 되기는 어려운, 즉 에어컨은 있지만 형편상 마음 놓고 틀지 못하는 가정에 대한 대책도 중요할 것이다. 에어컨 보급률이 78%라는 통계를 개인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에어컨이 필수재가 되어버린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은 전기요금 인하가 아니라 누진구간 조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생각하는 전기요금 누진제의 문제는 전기요금이 세금도 아닌데 징벌적으로 과도하게 부과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름 한철 에어컨 가동 때문에 늘어난 전기요금을 ‘요금 폭탄’이라 하는 것은 겨울철 난방을 위한 도시가스 요금에 비교해보더라도 지나친 감이 있다.

▲ 뉴스 화면 갈무리
▲ 뉴스 화면 갈무리

2015년 가구별 평균 전기사용량은 223킬로와트시(kwh)로 2만8천 원 정도이고, 주택용 전기소비를 500킬로와트시 이상 쓴 가구가 전체의 1.2% 밖에 되지 않았다. 택시, 자가용을 이용하는 기자들이 대중교통 문제보다는 휘발유 문제나 교통체증에만 관심을 보이듯이, 집에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살던 언론사 데스크들의 입장에서 누진제 폐지 주장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다. 원래 전기를 많이 쓰는 우리나라 최상위 0.4%(여름 한철이 아니라 평소에 21만원 이상 사용하는 세대가 0.4%)에 초점을 맞추어 전기요금 누진제를 폐지하라는 주장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배율이 11.7배가 되는 것은 1-2단계의 요금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기를 적게 쓰는 수용가에게는 저렴하게 전기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하되, 대부분의 중간층은 한계비용을 적용해서 현실적인 전기요금을 내도록 누진구간을 조정하면 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13년 발표한 <전력가격체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누진율을 완화할 경우 전국 가구의 71.7%가 한달 최대 6550원을 더 부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전기요금을 많이 내는 이들의 요금을 가지고 전기를 조금 쓰는 이들을 계속 지원해 왔던 측면도 있었기 때문에 누진제 완화내지 폐지는 오히려 다수 서민계층의 전기요금 인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덥다고 누진제만 손대면 전기요금이 여름 한철에만 저렴하고 나머지 시기엔 오히려 인상될 수 있다.

공공성에 입각한 전기요금 체계 및 결정구조 개편해야
전기의존적 삶에 대한 반성 필요

셋째, 우리나라 전기요금의 문제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용 전기요금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듯, 자본에 대한 국가의 특혜에 있다. 전체 전력소비량의 80%에 육박하는 산업용, 일반용 전기요금을 손대지 않은 채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만을 바꾸는 것은 근본적 대책도 아닐뿐더러 논의의 핵심을 왜곡하는 측면도 있다. 큰 공장에서 전기를 받는 데 원가가 적게 드는 것도 맞지만, 대기업들이 전기를 싸게 할인해서 공급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 대기업 367곳이 받은 전기요금 할인액은 10조 8,000억 원이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상위 20대 대기업이 받은 할인액은 3조 7,191억원에 달하니 말이다. 그리고 일반용의 경우 개문냉방이 비판받고 있음은 잘 알려진 바다.

▲ 사진 =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 사진 =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따라서 산업용 전기요금을 포함하여 공공성에 입각한 전기요금 체계 및 결정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 전기요금 원가에 대한 정보공개뿐만 아니라 전기요금 개편 TF 회의 등의 투명한 공개, 그리고 전기요금 결정구조에 대한 시민의 실질적 참여가 요구된다. 그렇다고 전기요금 체계의 개편이 에너지 공공기관 기능조정안에서 제시된 전력 판매시장 개방과 결부되어 에너지 민영화로 나아가서 초석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넷째, 가정용 전기요금의 경우 우리나라의 소비량은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급증해왔는데, 이는 그만큼 우리의 삶이 전기의존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터넷, 대용량 세탁기, 대용량 (김치)냉장고, 대형 텔레비전 등은 생활필수품이라 불가피하다고 치자. 하지만 최근 지어지는 건물이 모두 전기로 사용하는 빌트인 가전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가스레인지에서 유해가스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전기레인지, 인덕션 등 전기 주방용품의 사용이 늘어나고, 전기히터, 전기난로 등의 생산 및 구입이 확산되고 있는 것을 단지 생활의 편이가 증가하는 것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이 모두 ‘값싼 전기’를 전제로 생산하는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싼 전기요금은 전기소비를 늘리게 되고 늘어난 전기소비는 싼 전기요금을 유지시키는 석탄화력 발전과 원전을 더 늘리는 구실이 된다.

특히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싼 전기요금에 미세먼저 농도의 증가, 기후변화, 송전탑 설치와 관련된 지역 갈등, 핵폐기물의 양산, 원전 사고의 위험 등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는 데 따른 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들을 전기요금에 언제,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전기의존적으로 되어가는 삶, 전기의존적인 산업기술 자체가 바람직한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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