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무원노조 진군가 작사·작곡 추동엽 선생

“노래가 가진 힘, 진군가로 뜨겁게 뭉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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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월 24일 5시25분 물날(수요일)에. 공무원노조 진군가 ‘생일’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모든 행사에서 불러지는 이 노래가 만들어진 지도 벌써 14년의 세월이 흘렀다.

공무원노조 노래인 ‘공무원노조 진군가’. 이 진군가를 작사·작곡한 분은 어떤 사람일까? 지난 몇 년 동안 궁금했다. 이제는 백발의 문화 노동자일까? 아니면 아직도 열의 가득한 젊은 문화 노동자일까?

정답은 후자다. 지난 10일 공무원노조 울산 동구지부 사무실에서 이 진군가를 만든 주인공, 추동엽 선생을 만났다. 사실 선생이라는 호칭을 붙이기에는 너무 젊다. 1972년생. 올해 45세. 14년이 흘렀으니 작곡할 당시에는 훨씬 더 젊었다.

하지만, 공무원노조 진군가를 작사·작곡한 의미만으로도 선생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기에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 공무원노조 진군가를 작사·작곡한 추동엽 선생.
▲ 공무원노조 진군가를 작사·작곡한 추동엽 선생.

이날 인터뷰 자리에는 여승선 울산 동구지부장을 비롯해 동구지부 노래패 ‘비상’ 패원들도 함께했다. 정말 오랜만에 한 자리에 같이 한 비상 패원들과 추 선생은 10여 년도 훌쩍 지난 옛 추억을 꺼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비상 패원들은 추 선생을 ‘추 사부’라 부른다. 동구지부 노래패 비상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노래와 창작을 강습하며 투쟁을 함께했던 선생님이자 동지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비상’과 함께 선전물 등 자료 모아 글쓰고 노래 만들어

2002년 4월. 그야말로 공무원노조의 투쟁열기가 뜨겁던 시절. 울산 동구지부 노래패 ‘비상’에 추동엽 선생이 3월부터 강습을 맡았다.

추 선생은 “당시 전국적인 공무원노동자들 투쟁에도 불구하고 <철의 노동자> 등 기존의 노래들을 부르는 것을 보면서, 공무원노동자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그 때부터 3개월 정도 홈페이지며, 투쟁 현장 선전물들을 모아 비상 패원들과 함께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이게 됐다”고 말했다.

진군가 속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다’라는 가사도 당시 현장 선전물 속 주제 단어였다.

추 선생은 “망설일 것 없다. 주저할 것 없다. 지금 노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로서 당당히 섰으면 하는 내용을 중점으로 가사를 썼다”며 “비상 강습하면서 같이 토론하고, 얘기하고, 불러보고, 수정하면서 진군가를 완성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후 반주 작업을 하고 몇 년 동안 총회며 각종 집회, 대의원대회 등 공무원노조의 모든 행사에 노래패 비상과 함께 중앙 문예단체인 것처럼 전국을 누볐다.

▲ 공무원노조 진군가 작곡할 당시 창작 노트.
▲ 공무원노조 진군가 작곡할 당시 창작 노트.

이 자리에 함께한 여승선 지부장은 “지금처럼 시스템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옛날 전축에 공테이프를 꼽아 녹음을 했다. 이렇게 녹음한 것으로 전국을 누비며 공연하고 다녔다”면서 “한 번은 속리산에서 대의원대회가 있어 공연하러 가야하는데, 그 때 태풍이 와서 길가에 가로수가 쓰러져 있더라.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톱질을 해 나무를 치우고 공연하러 간 적도 있다”고 일화를 얘기했다.

여 지부장을 비롯한 비상 패원들은 “그 때 생각하면 상황도 열악했고 힘들었지만, 지금 이렇게 불리고 있다는 것이 무척 감회가 새롭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전국을 다니며 문예투쟁을 하던 즈음 동구지부를 비롯 많은 조합원들이 전국대의원대회에 공무원노조 진군가를 공식 노래로 채택해 줄 것을 요구했고, 이후 공식적으로 공무원노조 노래로 인정받게 됐다.

추 선생은 “이후 김호철 선배가 가수들 목소리와 내레이션으로 다시 작업을 했는데, 훨씬 느낌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지금의 진군가 중간에 나오는 여자 내레이션 부분도 다시 작업하기 전에는 원래 ‘비상’의 남자 패원 목소리였다.

‘진군가’라는 제목도 바뀔 뻔 했다(?)

추동엽 선생은 이날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창작노트 한 권을 내밀었다. 바로 공무원노조 진군가를 작곡할 당시 창작노트였다. 공무원노조 진군가라는 제목 옆에는 날짜와 요일, 시간이 적혀 있었고, 깔끔하게 정리된 음계들과 가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추 선생은 “당시 이 노래 제목에 있는 ‘진군가’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많은 토론이 있었다”면서 “좀 쎈 건 아닌지, 거부감이 들 수 도 있다는 등의 의견들이 있었지만 결국 진군가를 붙여 부르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반세기 우리의 역사는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져 왔다’라는 가사도 처음 가사에는 ‘지난 반세기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우리의 역사’였다. 부르면서 바뀌었다.

▲ 공무원노조 진군가 작곡할 당시 창작 노트.
▲ 공무원노조 진군가 작곡할 당시 창작 노트.

“이젠 100만 공무원노동자다. 바꿀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추 선생은 “노랫말도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웃으며 답했다.

추 선생은 “몇 해 전인가, 서울에 집회가 있어 올라갔었는데 수많은 공무원노동자들이 집회에서 ‘공무원노조 진군가’를 부르는데, 정말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면서 “잊지 않고, 불러주는 것에 정말 감격스러웠다. 문화 노동자로서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추 선생은 울산대학교 91학번이다. ‘소리마당’이라는 민중가요 노래패에서 기타를 배우고, 노래를 배우고, 운동을 배웠다. 추 선생은 한편으로 민중가요, 민중가수 등 문화 노동자들이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설자리를 잃어가는 것에 마음 아파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는 올해 초 문화예술스튜디오 ‘노래숲’을 설립했다. 지역 민중가수들과 함께 하는 사업이다. 이들과 함께 투쟁현장 공연은 물론 교육, 기획 등을 펼치며 울산 지역 문화 노동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노랫말 하나하나 뜨거운 마음으로 불러지길”

공무원노조에 대한 정권의 탄압에 추 선생은 “여기 비상 패원들처럼 공무원노조 조합원 모두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탄압을 뚫고 열심히 투쟁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특히 “실천적 투쟁이 뭔가 잘 안 되는 현실이지만 조합원들을 엮을 수 있는 조합 차원에서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면서 “문화든, 교육이든, 홍보든. 실천적인 투쟁 사업을 통해 힘 있게 싸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 주문했다.

▲ 공무원노조 진군가를 작사·작곡한 추동엽 선생.
▲ 공무원노조 진군가를 작사·작곡한 추동엽 선생.

추 선생은 “공무원노조에서 현재 강원지역 ‘동해와바다’, 광주지역 ‘희망1동’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문예패들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조합원들에게 “처음 이 노래 만들 때 여기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정말 뜨거웠다. 공무원노조 진군가를 부르며 투쟁의 손을 올릴 때 조합원들의 가슴에도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서 “노래가 가진 힘이 있다. 공무원노조 진군가로 뜨겁게 뭉치는 힘을 다시 한 번 가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8.15 행사 관련 지역 노래패와 합동 공연을 위해 이날도 연습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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