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무원노조 인천본부 연수구지부 박주연 지부장

“여성 간부가 제대로 서면 훨씬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상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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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여성 간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아니, 여성 간부라는 존재 자체가 드물다. 남성중심적 조직문화가 팽배한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 또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권익 쟁취를 위한 ‘투쟁’이 일상화된 노조 활동이 여성에겐 더 ‘험하고’, ‘거친’ 영역이란 점도 작용한다.

지난 3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천본부 연수구지부의 신임 지부장으로 선출된 박주연 지부장은 1999년 공무원직장협의회 때부터 시작해 2002년 공무원노조 출범부터 지금까지 연수구지부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여성 간부다.

22일, 연수구지부 사무실에서 박 지부장을 만났다. 박 지부장은 차분하면서도 강단 있게 신임지부장으로서의 각오와 노조에서 ‘각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간부’로서의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냈다.

-공무원노조 초창기부터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학생운동을 하셨었나요?
학생운동 경험은 없어요. 일반 회사를 다니다 96년도에 행정직으로 들어왔는데 공무원사회 문화가 지나치게 경직돼 있고 상명하복을 강요하더라구요. 상사라고 개인적 심부름도 많이 시키고…. 그런 것 때문에 문제제기를 많이 했고 부딪히기도 많이 했어요. 그런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아니까 직장협의회가 생기니 저보고 해보라고 하더군요. 그때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큰 일이 돼버렸어요. (웃음) 직협 때부터 부지부장도 하고 사무국장 일도 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됐죠.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천본부 연수구지부 박주연 지부장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천본부 연수구지부 박주연 지부장

-노동조합 활동이 남성들에게도 쉽지 않은데 여성 간부로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여성 간부 활동가들은 수적으로도 적고요.
힘들었죠. 공무원사회가 남성중심이고 나이나 직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젊은 여자가 노조한답시고’하는 그런 편견을 훨씬 더 받았던 것 같아요. 저는 99년도 직협 때부터, 그러니까 입직한 지 3년밖에 안 된 상태에서 시작했으니까요. ‘나이가 많거나’, ‘남자’가 노조 관련해서 이야기하면 큰 거부감이 없다가도 제가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꺼려한다는 느낌, 특히 초창기에 심했죠.

-초창기부터 부지부장으로 활동하셨으면 그동안 지부장으로 나오실 기회가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왜 지금까지 나오지 않으셨나요? 이번에 결단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남편이 반대해서요. (웃음) 사실 그건 핑계구요. 연수구지부가 그동안 신규 간부가 없었거든요. 초창기 간부들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할까, 피로도가 높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신규 간부들이 4명이나 새로 들어오면서 저도 자극을 받았어요. 언젠가 저 친구들이 지부를 이끌어가야 할 텐데 선배로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구나, 그래야 저 친구들이 그걸 보고 또 후배들을 이끌어나가고 노조를 이끌어 나가겠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선배로서 책임감이 작용한 거죠. 또 저도 그 친구들을 보고 힘을 받았구요.

-그럼, 가족(남편)은 설득이 되신 건가요?
설득이 잘 안 되고 있어요. (웃음) 그래도 계속 설득해야죠. 사실 남편도 제가 노조활동 하는 걸 좋아하고 바른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부 사람들과도 잘 알고 친하고요. 다만 ‘왜 니가 책임져야 하냐’고, 제가 또 다칠까봐 걱정하는 거죠. 2004년에 제가 파업해서 짤린 게 저한테는 그렇게 상처가 아닌데 가족들은 그때 저보다 더 힘들어 했던 거 같아요.

-후배 간부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지부장을 맡게 되셨다고 하셨는데 앞으로 연수구지부에 대한 특별한 활동 계획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연수구지부가 그동안 일상사업 중심으로 운영돼 왔어요. 초창기부터 족구대회, 문화나들이, 등산대회, 윷놀이 대회 등등. 특히 문화나들이는 우리 지부에서 처음 시작해 전국적으로 전파될 만큼 호응이 좋은 사업이었죠. 그런데 이게 오래되다 보니 동아리 사업처럼 되고 간부들의 피로도가 높아졌어요. 그래서 올해 연수구지부 사업 평가하면서 일상사업은 문화나들이와 윷놀이 두개만 남기고 노조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 조합원 확대, 대의원 세우기, 공무원U신문 강독, 임원 학습 등으로 지부 사업 방향을 바꿨습니다.

▲ 연수구지부 활동 사진(연수구지부 제공)
▲ 연수구지부 활동 사진(연수구지부 제공)

-<공무원U신문> 강독이요?
네. <공무원U신문>이 올 때마다 강독하는 것을 과제로 삼아 운영위 시작 전에 한 시간 정도 따로 시간을 내서 얘기하는 것을 올해 특수사업으로 정했어요. 임원들이 신문을 다 읽어야 조합원들에게 신문을 돌리면서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동안 신문을 돌리기만 하고 말았거든요. 좋으시죠?(웃음) 무엇보다 이번에 새롭게 들어온 간부들이 공무원 생활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들이 중간간부로 성장할 수 있게끔 임원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우리 지역에 노동희망발전소라는 교육관련기관이 있는데 사전에 우리가 받고 싶은 교육이 뭔지 설명해서 연수구지부 맞춤형 교육을 8강정도 진행했는데 참 좋았어요. 하반기에도 또 실시할 계획입니다.

-성과퇴출제 저지 관련해서 연수구지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5월 총회 조직을 위해 4월 초부터 순회하면서 성과상여금 얘기를 많이 했어요. 마침 성과등급을 매길 때라 조합원들이 관심과 호응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우리 지부는 조합 지침대로 선언도 하고, 성과퇴출제 관련 의식조사서도 제출했고, 5월 9일부터는 점심시간에 조합원들이 식당 앞에서 1인 시위도 진행하고 있어요. 성과상여금 반납 결의도 지속적으로 받고 있고요. 폐지에 대해서는 다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당장에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아니고 내년 대선까지 바라보면서 오랫동안 싸워야 한다고 설명드리고 있죠.

-그동안 노조 활동을 하시면서 특별한 기억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아주 힘들었다거나 또는 큰 보람을 느꼈다거나.
가장 힘들었을 때는 공무원노조가 갈렸던 시기였어요. 파업 이후 임원들이 해고되면서 조합원들이 굉장히 위축됐었는데 그게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탄압이 심해져 노조사무실도 뺏기고 천막치고 농성중이었는데, 또 조합이 나눠지냐마냐 그런 갈등이 생기고…. 저도 간부이긴 했지만 왜 갈라져야 했는지 정확히 몰랐어요. 그때 너무 지쳐있어서 상황을 좀더 제대로 알려는 노력을 하지 못했요. 연수구지부가 갈라져 나오면서 친하게 지냈던 다른 지부 동지들과 연락이 뜸해지고…. 그때가 노조 활동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요.

-그렇게 힘들었던 시기를 극복하고, 꾸준히 노조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랄까, 신념 같은 게 있을 거 같아요.
노동조합 일이 바르고 건강한 일이잖아요, 힘들지만. 다양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나와 다른 조건,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노조활동 만큼 없는 것 같아요. 공무원노조에서 배운 게 많아요. 무상으로 교육을 받은 셈이죠.(웃음)노조 활동을 안 했다면 되게 팍팍하고 이기적이고, 또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을 것 같아요.

또 신규 간부들이 들어왔을 때 굉장히 기뻤어요. 노조는 제가 퇴직을 해도 계속 존재해야 하는 가치 있는 집단인데 건강하고 젊은 친구들이 노조활동을 하겠다고 하니까 너무 기쁘고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더군요. 젊은 친구들이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제기를 하니까 천편일률적으로 했던 지부 사업들에 변화가 생기고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아요. 물론 그들이 개인적 성향도 강하고 편의적인 사고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경험자로서 선배로서 조언해주고 학습을 통해 바꿔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젊은 간부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과 학습에 집중하는 게 우리 지부의 과제죠.

▲ 박 지부장은 "연수구지부는 앞으로 노동조합 본연의 조직 확대 사업과 대의원 세우기 사업, 신진 간부의 교육과 학습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 박 지부장은 "연수구지부는 앞으로 노동조합 본연의 조직 확대 사업과 대의원 세우기 사업, 신진 간부의 교육과 학습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사회의 다른 영역도 그렇지만 특히 노동조합에서 여성이 활동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으실 것 같아요.
노동조합 활동이 나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건데 여성의 노동조건이 더 나쁘니 활동하는 게 힘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여성국장(박 지부장은 2004~2005년 때 조합 중앙에서 여성국장을 맡았다)을 하면서 여성간부들도 성평등 의식이 높지 않다는 걸 종종 느꼈어요. 여성 간부가 여성들이 보건휴가를 쓰는 게 여성의 지위를 낮추는 거고, 남자들이 상대적 피해를 보지 않는냐, 또 현장에서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야근하는 게 평등이라고, 여성숙직제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이런 얘기를 하면서 남성중심 문화에 젖어있어요. 여성 간부들 스스로가 여성의식이 없으면 남성 간부들의 성평등 의식이 저절로 생기긴 만무하죠.

제대로된 성의식만 가진다면 여성이기 때문에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훨씬 넓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걸 인지하면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다른 사회적 약자의 시선들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죠. 여성간부들이 제대로 활동하면 세상이 훨씬 더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더 여성간부를 잘 키워야 하는데…여성간부가 활동하기 어려운 건 인정하고 배려해줘야죠. 애도 키워야 하지, 남편도 안 도와주지, 직장에서도 힘들지…, 어려운 게 충분히 이해되죠. 그런 면에서 여성 간부들에게 모든 활동을 강요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봅니다. 할 수 있는 걸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조직 안에서 인정해 줘야죠.

-끝으로 조합에 하고 싶은 말씀, 바라는 점을 말씀해 주세요.
현장의 의견을 많이 들어줬으면 합니다. 가끔 현장과 유리된 결정을 해서 내려보낼 때가 있거든요. 공무원사회가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는데 공무원노조도 그런 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어렵지만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죠. 중앙에서 조합원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창구를 많이 만들었으면 해요. 또 다른 노조도 그렇지만 공무원노조 간부들도 다들 늙어서 힘들고 지쳐 있잖아요. 현장 간부들을 소중히 알고 그들이 지쳐있을 때 조합이 따뜻이 안아줄 수 있는 사업에 대한 고민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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