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 칼럼]

노동이사제, 참여형 노사관계 확산의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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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오는 10월부터 전국 최초로 노동이사제를 15개 투자출연기관에 도입하기로 했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하여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노동이사제 도입은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통합 노사 잠정합의안이 노조의 조합원 투표결과 부결되어 주춤하는 듯했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은 4월 27일 ‘노동존중특별시 서울 2016’설명회를 갖고 근로자 이사제 도입을 예고한 데 이어, 지난 5월 10일 기자설명회를 열고“경영진과 노동자들이 소통과 협치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경영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됐다”며 근로자 이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하철 통합 노사 잠정합의안이 나왔을 때에도 유독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해서만 우려를 표하는 기사와 사설이 쏟아지더니,‘근로자 이사제’를 도입한다는 서울시 발표에 대해서도 경총 등 자본의 대리인들과 보수경제지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노동이사제의 부작용과 해악을 강조하며 비난을 하고 나섰다. 경영권을 과도하게 침해할뿐더러 시장경제의 뿌리를 뒤흔든다는 것이다.

▲ 4월 27일 서울시청에서 열렸던 '노동존중특별시 서울 2016' 설명회. 화면 = 서울시 영상 갈무리
▲ 4월 27일 서울시청에서 열렸던 '노동존중특별시 서울 2016' 설명회. 화면 = 서울시 영상 갈무리

이러한 우려와 비난이 타당한 것일까. 물론 공공기관에서 노동자 대표가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기업 지배구조 및 의사결정에 노동자가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러한 우려와 비난이 제기되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러한 논란을 계기로 노동자의 경영참여 문제가 사회적 공론의 장에 올라오게 된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아직 시행해보지도 않았는데, 불분명한 근거를 들어 노동이사제 도입에 부정적인 목소리만 높이는 건 지나친 기우다. 대부분이 노동이사제에 대한 편견과 사실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다.

우선, 노동이사제가 노사공동결정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독일에서마저 흔적만 남아 있는 구태의연한 제도라며, 경영 혁신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 지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유럽연합 28개국 중 독일·스웨덴 등 18개국에서 법에 규정되어 있고,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공공기관의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정책제언에 따라 공공기관 이사회에 근로자 대표의 참여 또는 확대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공공기관 운영법의 근거가 된 「OECD 공기업 지배구조 가이드라인」(Guidelines on Corporate Governance of State-Owned Enterprises)도 2015년 개정안에서 노동자 대표의 이사회 참여 목적이 이해관계자로서 노동자들을 향한 책임을 강화하고, 정보 공유를 원활하게 하는 데 있으며, 이를 통해 이사회 결정에 대한 집행력을 제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더욱이 노동이사제가 경영 혁신에 걸림돌이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노사공동결정제도를 가진 국가에서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가 압도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사가 경영 문제를 함께 결정하고 공동으로 책임을 지기 때문에 기업의 생산성이나 노사관계 안정에도 기여한다는 것이다.

▲ '근로자 이사회' 서울시 설명자료
▲ '근로자 이사회' 서울시 설명자료

둘째, 노동이사제는 노조가 사용자의 고유 권한인 인사·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이기에 옳지 않다고 보기도 한다.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 모델을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 대표의 경영상 주요 결정과정 참여를 보장하고 있는 유럽 쪽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모델(Stakeholder Capitalism)에서뿐만 아니라 영미 쪽의 주주 자본주의 모델(Shareholder Capitalism)에서도 기업에 대한 자본의 배타적 경영권이라는 논리와는 일정하게 거리를 두면서 노동자의 영향력을 증진시키고자 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노동자 경영참여를 위한 나름의 실천방안들이 발전되어 왔다. 설사 주주 자본주의 모델이라 하더라도 이를 부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셋째, 노동이사제가 도입될 경우 공기업이 중장기적 안목을 갖고 추진해야 하는 대형 투자사업의 발목만 잡을 것이며, 기업 활동을 정치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기업들이 비효율적 운영을 해왔던 가장 큰 원인은 경영 능력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낙하산 인사에 있었다.

능력 중심의 성과연봉제 도입이나 저성과자 퇴출을 불법적으로 추진하는 한편으로, 공공기관 임원직을 선거 출마용 경력쌓기 자리로 여기는 비전문가 정치인들이나 검증이 되지 않은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모순된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하나. 잘못된 정부정책을 무조건 밀어붙이고 노조 파괴에 나서다 수조 원대의 경영상 손실을 냈으면서 그 책임은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노동자들이 경영책임을 분담하면서 내부에서 견제하고 감시 역할을 할 수 있는 노동이사제와 같은 시스템이 오히려 시급히 요구된다 하겠다.

나아가 공공기관의 노동자들은 그 기관의 내부자일 뿐만 아니라 시민의 일원이기도 하기 때문에 기관의 정보와 기술을 누구보다도 더 잘 파악하고 있고 동시에 이를 공공성 강화와 연결시킬 가능성을 갖고 있다.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질 제고, 공공재로서 보편적 서비스의 유지를 위해서도 노동자 대표의 이사회 참여(BLER: Board-level Employee Representation)가 요청되는 것이다.

▲ '근로자 이사회' 서울시 설명자료
▲ '근로자 이사회' 서울시 설명자료

넷째, 산하 지방공기업의 부채 규모가 SH공사 16조9,896억 원, 서울메트로 3조568억 원, 서울도시철도공사 1조2,540억 원 등에 달해 빚더미에 올라 있는 서울시가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하기는커녕 노동이사제를 도입하여 경영 악화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PSO(공공서비스의무)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요금을 통제한 결과인 지하철의 부채나 전임 시장의 무리한 개발사업 진행 등의 정책실패에 따른 SH공사의 부채가 노동이사제로 인해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다. 이를 외면한 채 지방공기업 부채가 노동자 책임인 양 돌리는 것은 그 의도가 불순하다 할 수밖에 없다. 아니, 경영 악화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묻는다면, 경영참여 권한도 주어져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다섯째, 사실 서울시의 방안과 같이 기관장이나 상임이사도 아니고 권한과 책임이 미약하여 유명무실한 비상임이사에 노동자 1~2명이 들어간다 하여 천지개벽이라도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도 우습다. 그 정도만으로는 노동자 경영참여로 보기도 어렵고, 노동자의 고용 및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 이런 점에서 서울시의 근로자이사제가 나름의 성과를 거두려면 비상임이사의 역할과 책임 제고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노동자 경영참여라는 측면이 강조되기보다는 해당 공공기관의 주요한 이해관계자 중 하나인 노동조합의 참여를 통해 설립 고유 목적에 부합하도록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참여적 지배구조 확립, 운영의 민주화에 기여한다는 측면이 좀 더 주목되어야 한다.

물론, 노동이사제가 노조로 하여금 일부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을 승인토록 하고, 사용자에 포섭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선이 있음도 간과해선 안 된다. 노동자 경영참여는 ‘참여’를 통한 영향력 확대인 동시에 ‘연루’를 통한 공동책임의 증가라는 의미에서 노동자에게는 양날의 칼이다. 노동이사제 도입이 노사간의 ‘공모된 실패’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장에서부터 차근차근 노동자가 생산을 책임지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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