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찬 칼럼] 탱자서신⑪

총선 후, 우리가 쉬지 않고 희망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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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016년 4월,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바로 지금도 정신 차릴 새 없이 여러 일들이 마구 벌어지고 있다. 우선, 20대 총선이 4월 13일 막을 내렸다. 여럿이 제안했던 것처럼 전략투표가 행해졌다.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노골적 호남 지역정당이 출현했고, 확고한 3당 분할 체제가 들어섰다. 그만큼 중요하고 뼈아픈 것인데, 주류 정치는 별반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했지만, 진보정당은 사실상 퇴패했다. 정의당이 극소수 정당으로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이런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가? 이는 한국정치와 진보정치, 미래정치에 관해 대체 어떤 것을 시사하고 있는가? 정치변화, 정치를 통한 사회변화의 가능성은 있는가? 총선은 과연 희망을 지시하는가, 아니면 실망 혹은 절망을 가리키나?

세월호 참사 2주기 기억식이 따랐다. 많은 사람들이 추모의 광장에, 애도의 길에 나섰다. 안산으로, 단원고로, 광화문으로 모여들었다. 그럼으로써 조용히 죽은 자들을 기억하고, 산자들끼리 작은 위안을 얻는다. 부재를 실감하고, 존재를 확인한다. 반성하고 각성한다. 아무 것도 한 게 없어 부끄러워하며, 아무 것도 하는 게 없는 국가에 대해 분노한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정권과 각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라. 국가가 집요하게 고수하는 강경책이다. 그래서 진실은 아직 어둠에 갇혀 있고, 주검은 물속에 쿡 잠겨 있으며, 배는 바닥에 푹 주저앉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연 희망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가? 국가의 민주적 개조를 희망할 수 있나?

아뿔싸, 국가는 이미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개조된 게 아닌가? 야당 필리버스터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테러방지법은 전혀 다른 국가의 탄생을 활짝 열지 않았나? ‘테러리즘’이라는 유령의 이름으로 모든 권력 비판의 발언, 체제 반대의 집회, 권력 적대의 시위를 감시‧검열‧통제‧단속할 수 있는 무소불위 전체주의 권력국가의 탄생을 우리는 바로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들뢰즈와 가타리가 예고한, 푸코의 훈육사회에서 한층 나아간, 통제사회가 대한민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조밀히 구축되고 있지 않은가? 과연 이런 ‘반테러’의 제국 하에서 일국의 사회운동, 진보정치, 민주체제는 설계․운영될 수 있는가? 진정한 인구보존, 인명구제, 사회보존의 국가생명정치가 가능하겠는가?

▲ 세월호 참사 2주기인 지난 16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
▲ 세월호 참사 2주기인 지난 16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

그래도,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욱 희망해야 한다. 너 또한 희망을 집요하게 말해야 하며, 우리 모두 희망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게 이 서신 작성자인 탱자의 생각이다. 너무 쉽게 희망이 있다고 떠들거나, 거꾸로 희망은 없다는 절망의 비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오해하지 마시라. 내가 희망을 말하는 것은, 총선 결과가 여당의 실질적인 패배로 끝났고 범야권의 사실상의 승리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마침내 가시화되고, 한층 높아져 보이기 때문도 절대 아니다. 분명, 정권의 레임덕은 가속화될 것이다. 실제로, 오만한 각하의 권세가 급속히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으며, 조중동종편은 일제히 그녀에게 결별을 고했다. 그런 보수수구진영의 작태가 우리에게 희망이다?

아서라. 총선 이후가 희망을 뜻한다는, 야권의 승리가 곧 희망이라는, 보수의 일시 패배가 바로 희망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문재인 등 야권 유력 대권주자들의 지지율이 상승 가도를 달리기에 희망이라는 단순 공식을 탱자는 거절한다.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아니 지극히 현실적인 이 탱자는 총선승리가 대선승리로 이어진다는 안일한 전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 집요하게 권력을 욕망하는 보수수구세력이다. 정권유지를 절절이 희망하는 그들이다. 세월호 유가족과 애도하는 시민을 좌익으로 내몰고 반국가사범으로 취급했던 그들이다. 테러방지법에 집착하면서, 그 비판세력을 비국민으로 규정했던 그들이다. 그런 그들이 정권을 쉽게 포기할 리 만무하다.

국가권력을 집요하게 욕망하는, 정권의 재생산을 악착같이 희망하는 그들이다. 그렇기에 수습정리가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정지작업을 서두르는 그들이다. 그런 목적의식 하에, 본능적으로 일치단결하여, 조직적이고 또한 기민하게 기동하는 그들이다. 생존위기관리의 움직임이다. 세월호 참사 때와 달리 바로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태에서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권력유실의 재난을 원하지 않는다. 오직 움직여야 살고, 행동주의만이 희망이지 않은가? 조중동종편이 한편이던 대통령을 버리는 일이나, 뜬금없이 반기문의 과거 행적이 스캔들로 소개되는 것을, 어버이연합을 둘러싸고 불거진 최근 논란까지도 우리는 이런 저들의 생존의지와 연관시켜 복잡하게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조지 프레데릭 와츠(George Frederic Watts, 1817~1904)의 '희망(hope, 1886)'.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한 가닥 줄이 남은 악기를 연주하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희망을 표현한 그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당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알려지며 더욱 유명해졌다.
▲ 조지 프레데릭 와츠(George Frederic Watts, 1817~1904)의 '희망(hope, 1886)'.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한 가닥 줄이 남은 악기를 연주하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희망을 표현한 그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당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알려지며 더욱 유명해졌다.

정권 재창출을 욕망하는 세력의 기민한 공작, 시의적절한 플레이, 의미심장한 전략. 우리가 냉철히 유의할 것들이다. 지켜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에 응대하는 기민한 전술과 유효한 전략적 행보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하기 위해 우선시되어야 할 게 다름 아닌 희망이다. 希望. 그것은 명사가 아닌 동사형이다. 내가 뭔가를 기대하고 바라며 갈구하고 욕망하는 행위, 실천 그 자체다. 어떤 것을 욕망하고 그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고자 움직이려는 태도, 자세다. 희망은 있는 게 아니고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시가 아닌 현실에서는 오직 희망하고 희망할 일만 남는다. 희망은 욕망이다. 오직 이 희망 즉 욕망의 정동만이 생명 생산, 운명 생성, 미래 생환의 길이 된다.

내가 현 시점에 희망을 말하려는 이유다. 희망 즉 욕망은, 니체의 사유를 따르자면, 생존의 의지 즉 권력의 의지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자신의 삶을 뜻대로 경영하며 상대의 힘에 맞서 자기만의 고유한 힘을 유지코자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이 희망이다. 권력의지, 권력에의 의지가 희망인 것이다. 이런 니체식의 사유는 바로 지금 현실의 국가정치 상황에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보수수구우익세력은 총선 패배라는 위기상황에서도 저 희망 즉 권력의지를 쉽게 놓는 법이 없다. 오히려 더욱 치열하게 안팎의 권력다툼에 나서고, 이를 위한 정신무장과 조직정비를 서두른다. 위기의 시간이기에 더욱 권력을 의지하고, 정권재창출을 욕망하라! 희망하지 않으면 생존은 없다. 죽음이다. 이를 그들은 잘 안다.

이들의 지배권세로부터 해방됨으로써만 평등‧평화‧평온의 생명정치를 실현할 수 있을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가로이 변화를 낙관하고, 태평스럽게 희망의 미래를 상상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실망이고 절망인가? 저 무도한 세력들로부터 한수 배워야 한다. 욕망하고 희망하라. 살아남으려는 생존의지, 자기 식대로 가려는 권력의지를 당장 능동적으로 발하라. 국가권력을 욕망하고, 정권교체를 희망하라. 그럼으로써 나의 생계와 너의 생존을 가능케 하라. 세월호 진실규명, 테러방지법의 재론, 재난상황극복이 가능할 사회체제다. 국가의 민주정치적인 재구성이다. 저들의 희망대로 된다면 우리에겐 폭력과 국가테러, 재난의 현재가 지속될 것이기에, 국가권력을 희망하는 것만이 미래에 대한 우리의 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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