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퓨처컨설팅 유정식 대표

"성과주의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 더 괴롭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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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과 성과에 따라 채용과 임금이 결정되는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으로 바뀌어야 고용을 유지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공무원 임금체계도 능력과 성과에 따라 결정되도록 개편해 가겠다”

한국 행정부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해 8월 6일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민간에 ‘저성과자 일반해고’ 지침,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공직사회 ‘성과급간 격차 강화 및 퇴출제 등을 추진하며 한국 사회를 ‘능력과 성과 중심에 따라 보상받는 사회’로 만들어(?) 가고 있다.

박 대통령의 말에 깔린 기본 철학은 ‘돈(보상)을 많이 지급하면 인간은 일을 열심히 하게 돼 있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제에 의문을 던지며 평가제도의 근본적 문제점을 알리고 있는 컨설턴트가 있다. 기업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인사·전략 컨설팅을 해 오고 있는 인튜처컨설팅 유정식(45) 대표. 그가 지난 2012년 부산에서 했던 ‘평가에 관한 오해’라는 강연이 유튜브를 통해 전파되며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14일 그가 있는 서울 마포구 연희동 사무실에서 유 대표를 만났다.

“평가제도를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해도 평가는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그러니 평가제도를 버려라”

일반적으로 기업 컨설턴트들은 기업의 인사, 조직, 노무, 사무 관리 등 기업경영 전반을 진단해 효율적 경영을 위한 자문을 제공한다. 연봉제나 성과급 제도를 설계하는 일도 그들의 몫이다. 연봉제나 성과급제 같은 차등보상을 위한 평가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차등보상의 근거가 되는 ‘평가’ 자체가 공정하거나 객관적이지 않다면 어떨까? 조직 구성원들이 수긍할 수 있을까?

유정식 대표도 처음에는 성과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컨설팅을 시작했다. 그가 입사한 컨설팅 회사에서 배운 것도 그런 것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한 평가지표를 개발하고 정교하게 평가제도를 설계해도 사람들은 계속 평가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평가가 근본적으로 객관적일 수가 없으니 낮은 평가를 받은 사람은 불만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평가제도라는 게 오히려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들을 더 괴롭히더라구요. 열심히 일을 하는 욕구가 강한 직원들이 ‘평가지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기에 맞춰 일을 해야 되고 그러다보니 자율성은 사라지고 타율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 인퓨처컨설팅 유정식 대표. 대부분의 기업 컨설턴트와 달리 유 대표는 평가제도의 근본적 문제점을 제기하며 조직문화를 인간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인퓨처컨설팅 유정식 대표. 대부분의 기업 컨설턴트와 달리 유 대표는 평가제도의 근본적 문제점을 제기하며 조직문화를 인간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만난 기업의 CEO들도 평가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여기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런 방식이 편리하기 때문이죠. 몇 개의 평가지표를 가지고 점수를 매기고 서열화하는 방식에 길들여져 있기도 하구요.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단순하게 지표 몇 가지로 측정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또 평가지표를 아무리 많이 제시한다고 해도 개인의 성과 전체는 결코 평가할 수 없구요”

돈에 의한 보상은 오히려 인간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객관적이지 못한 평가에 기반한 차등보상제도는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 ‘보상’(금전)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한다는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들은 돈을 더 많이 준다고 해서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적게 받는다고 일을 안 하는 것 아닙니다. 조직 내에서 본인이 얼마나 인정받느냐, 여기에서 가치를 찾는 것입니다. 연봉을 높였을 때 효과는 고작 한달 정도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가 있죠. 연봉을 많이 받는 사람들은 단기적 성과에 매달리고 장기적인 문제는 신경쓰지 않게 됩니다. 결국은 회사의 성과는 낮아지게 되는 것이죠”

유 대표는 인센티브를 받고 일을 하게 되면 어느새 거기에 길들여져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여러 심리학 실험들이 증명하고 있다고 했다. 금전에 의한 보상이 오히려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 지난 2012년 Tedx부산 강연에서 '평가에 대한 오해'라는 이름으로 강연을 펼치고 있는 유정식 대표. 사진 = 유튜브 화면 갈무리
▲ 지난 2012년 Tedx부산 강연에서 '평가에 대한 오해'라는 이름으로 강연을 펼치고 있는 유정식 대표. 사진 = 유튜브 화면 갈무리

그는 차등보상에 기반한 연봉제가 아니라 균등보상에 기반한 ‘호봉 상한을 둔 호봉제’를 제안했다. 업무 능력이 무한정 상승하는 것이 아니므로 어떤 시점에서는 더 이상 호봉 인상 없이 물가인상에 따른 인상만 반영하는 상한 호봉제가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유 대표는 조직 구성원을 ‘당근과 채찍’으로 다룰 수 있다는 사고를 버리고 인간존중에 기반한 인간중심 인사제도로 조직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평가’를 폐기하고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피드백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에도 부모와 자식 간에 일어나는 피드백이 일상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럴러면 대화를 많이 해야 하고 시간을 많이 써야 하죠. 사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계속적으로 조직 문화를 바꿔가면서 안착시켜야 하는데 기업들은 인간중심 인사제도라고 해서 몇 가지 도입했다가 몇 번 해보고 안 되니까 원래 평가 방식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직사회 성과주의 강화는 대국민서비스 악화로 이어질 것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와 공직사회 성과주의 강화와 그에 따른 퇴출제 도입에 대해서 유 대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총론에서는 동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썩은 사과’라고 하는, 진짜 사람들을 괴롭히고 조직을 해치는 0.5% 이내의 사람들을 골라내서 정말 조직의 역량을 개발할 수 있다면 말이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런 것보다는 일괄적으로 사람들을 정리해서 인건비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보입니다. 기업주들의 입맛에 맞춰서 해고를 쉽게 해주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노동조합에서 그것을 반대하고 막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본부가 지난 달 3일, 서울시청 앞에서 공직사회 성과급제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본부가 지난 달 3일, 서울시청 앞에서 공직사회 성과급제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저는 우리나라의 공공서비스 수준이 다른 선진국가에 비해 상당히 높다고 봅니다. 해외에 나가보면 스페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 경험한 것인데 관공서에서 서류 하나 떼려면 하세월이고 오히려 자기네들 스케줄에 맞추라고 국민한테 윽박지르는 경우 많습니다. 우리나라 공무원 청렴도가 그다지 높게 나오지 않는 것은 고위 공무원들의 부패 때문이지 일선 공무원들이 청렴하지 않거나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고위공무원들이나 산하단체장들인데 쇄신이 필요하고 공직 기강을 세운다고 하면서 5급 이하 공무원들만 잡으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그는 공직사회가 성과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면 대국민 서비스가 망가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대국민서비스가 보상과 연결되면 공무원분들 내부에서 많은 갈등이 생길 겁니다. 동사무소에서 단위 시간 안에 서류를 많이 발급하는 게 잘 하는 것인지, 내방한 주민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더 잘 하는 것인지 충돌하며 헷갈리겠죠. 성과급이나 보상만을 생각하면 내방한 사람과 눈 한번 마주치치 않고 설명도 하지 않게 되고…. 이럴 경우 겉으로는 성과가 높아지는 것처럼 보여도 대국민서비스는 망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대국민서비스의 질은 떨어지는데도 직원들에게는 보상이 가는 엉뚱한 결과가 반드시 발생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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