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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생명의 근원으로 가는 여행물영아리오름
최창남 작가  |  gnews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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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18  09: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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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남 작가

우리나라의 대표적 주거형태는 아파트이다. 비행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이나 김포국제공항으로 들어오며 내려 보면 즐비하게 늘어선 아파트를 볼 수 있다. 아파트공화국이다. 땅이 좁고 인구가 많은 탓도 있겠지만 인간을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지 않고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소비자로만 바라보는 사고의 빈곤에도 원인이 있다. 자본주의 소비자로서 자연과 괴리된 채 살아가는 현대 도시인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아파트라는 주거형태이다.

도시인들은 대체로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하늘 높이 솟은 고층아파트일수록 비싼 아파트이다. 허공에 뜬 채 먹고 자고 싼다. 허공에서 허공으로 허공을 밟으며 살아가고 있다. 땅으로 내려올 때에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직장이나 학교 등 어딘가를 갈 때에도 차를 타고 공중에 떠서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두 발을 땅에 대고 대지를 느끼며 걷는 법이 거의 없다. 허공에서 허공으로 이동하는 삶이다. 부초와 같은 떠다니는 삶이다. 자연과는 철저히 유리된 삶이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을 느끼고 이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으로 여겼던 우리 민족의 정신을 이해하라고 말하는 것은 곤혹스런 일이다. 숲과 자연이 재화를 일구는 도구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해주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영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바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숲은 영적 공간이다. 숲길을 걸으면 누구나 지친 몸이 회복되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 숲은 영혼의 안식을 주는 영적 공간이다. 자연은 영혼의 고향이다. 자연과 유리 된다는 것은 자연이 주는 치유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에서 오는 수많은 문제들, 고독과 절망, 이런 저런 상처들을 치유 받지 못한 채 오로지 홀로 감당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이러한 생활문화, 주거형태와도 관련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 차를 버리고 숲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영혼의 안식을 얻고 마음의 치유를 얻는 출발점이다. 차를 버리고 걷자.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천년 대 들어 걷기 열풍이 불었다.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걷기 열풍의 한 계기를 마련한 것이 제주의 올레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걷기 위해 제주를 찾는다. 올레길을 걷고 섬을 걷고 오름이 품어낸 길을 걷고 오름으로 들어간다.

걷는다는 것은 빨리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빨리 가려면 걷지 말고 뛰어야 한다. 힘들게 뛰지 말고 차를 타는 것이 낫다. 걷는 것은 속도의 효율성이라는 가치와는 상관이 없다. 걸음의 가치는 소통이다. 교감이다. 나 아닌 다른 것들과의 소통을 의미한다. 자연과의 교감이다. 하늘과 땅, 풀과 꽃, 나무와 새, 구름과 바람에 이르기까지 내 밖에 있는 모든 것들과 교감하는 것이다. 그 교감을 위해 길을 걷는다. 길은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있는 숨의 길이다. 숨결이 이어지는 생명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길은 삶의 일부인 동시에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사람은 걷는 존재이다. 사람이 두 발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은 걸어 다니라는 것이다. 걸으며 보고 만지고 느끼며 자연을 비롯한 다른 생명들과 교감하라는 것이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가 ‘인’(人)이라는 한 글자로 이뤄지지 않고 ‘간’(間)이라는 글자를 더해 이뤄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은 홀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더불어 존재하는 ‘사이(間)의 존재’라는 것이다.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관계의 존재라는 의미이다. 나 자신과 나 아닌 모든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은 존재하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걷기는 바로 그런 ‘사이의 존재’로서의 나를 만나고 회복하는 출발점이다. 그러니 걷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제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섬이다. 눈길 닿는 곳마다 천혜의 비경이다. 올레길 어디 하나 아름답지 않은 길이 없다. 오름도 저마다의 비경을 품지 않은 곳이 없다. 삼백 육십여 개나 된다는 많은 오름들 중 홀로 걸으며 자연과 교감하며 자신을 만나기 좋은 곳을 꼽는다면 단연 남원읍 수망리에 있는 물영아리오름이다. 무리 지어 걷기 보다는 홀로 혹은 둘이 걷기 좋은 길이다. 바람과 풀과 나무의 기운을 느끼며 걷다 보면 절로 위로를 얻게 되는 치유의 길이다. 수런수런 이야기 나누며 길을 걷다 보면 절로 평안을 얻게 되는 생명의 길이다. 생명의 땅이다.

   
▲ 물영아리오름 들어가는 길

물영아리오름은 남조로 1118번 도로에 위치해 있다. 네비게이션이 주차장까지 안내한다. 물영아리오름을 품고 있는 수망리는 물의 땅이다. 수망리의 수망(水望)은 ‘물을 바라보다’라는 의미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그런 탓에 마을 이름에도, 오름 이름에도, 오름에 깃든 전설에도 모두 물이 들어 있고, 물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문헌들을 살펴보면 물영아리오름의 한자 이름은 주로 ‘수영악’(水盈岳), ‘수영악’(水靈岳) 혹은 ‘수망악’(水望岳)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약간씩 변형된 다른 이름들도 있지만 의미는 거의 같다. 모두 한글의 발음이나 의미를 살려 작명한 한자차용표기이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기록하든지 ‘물’(水)을 빼놓지 않았다. ‘물이 가득 차있는 산’ ‘물이 있는 영적인 산’ ‘물을 바라보는 혹은 보고 있는 산’ 등의 의미를 지닌 이름들이다. 물론 이는 이 오름의 정상 분화구에 물이 늘 고여 있어 붙여진 이름들이다. 이 분화구 호수와 관련된 전설도 전해진다.

수망리에 처음 사람이 살 때의 일이다. 한 젊은이가 소를 들에서 방목하다가 잃어버렸다. 소를 찾아 들과 마을을 샅샅이 뒤지고 오름 정상까지 올라갔으나 찾지 못하였다. 젊은이는 기진맥진 지쳐 앉은 자리에 쓰러졌다. 꿈을 꾼 듯 아닌 듯 비몽사몽간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말을 했다.

“이보게 젊은이, 소를 잃어버렸다고 상심하지 말게. 내가 그 소 값으로 이 오름 꼭대기에 큰 못(池)을 만들어 놓겠네. 그러면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소들이 목마르지 않게 될 것이네. 그러니 잃어버린 소는 잊어버리고 다시 한 마리 구해 부지런히 키우게. 그러면 살림이 늘고 궁색하지 않을 것이네.”

눈을 뜨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 때 맑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비가 장대처럼 쏟아지며 우레 소리와 함께 번갯불이 번쩍했다. 우레와 번개에 놀라 젊은이가 혼절했다 깨어나 보니 다음날 아침이었다. 젊은이는 주위를 둘러보다 깜짝 놀랐다. 오름 정상의 분화구에 푸른 물결이 호수를 이뤄 출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한달음에 달려 내려와 마을에 이 사실을 알렸다. 이때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오름 정상에 물을 여물게 가득 앉혔다는 뜻으로 ‘물영아리’라 불렀다고 한다.

물이 여물게 가득 앉혀져서, 물이 가득해서 ‘물영아리’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말이다. 비가 와도 고이지 않아 건천 밖에 없는 이 섬에서 언제나 물이 가득한 호수를 품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은총이란 말인가. 생명이 절로 찾아와 깃드는 축복 받은 땅이다. 그런 땅이니 사람들 모여 살았을 것이고, 마을 이름도 ‘물을 바라보는 마을, 물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닌 ‘수망리’(水望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오름의 둘레길이 ‘물보라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겠다. 참으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물영아리오름을 품고 있는 수망리는 생명의 근원인 물이 가득한 땅이다. 그러니 말을 키우기에도 좋아 수망리공동목장이 자리하고 있다. 물영아리오름이 초원을 품고 초원은 말들을 키워 목장을 이루게 된 것이다.

   
▲ 수망리공동목장 초원과 물영아리오름

오름으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서면 삼나무 줄지어 늘어선 수망리공동목장을 만난다. 철조망이 쳐져 있어 목장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초원 건너편 삼나무 숲 위로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는 물영아리오름을 볼 수 있다. 철도의 침목을 깔아 놓아 추억을 불러오는 삼나무 길을 따라 들어가면 오름의 둘레길인 물보라길을 만나게 된다. 오름의 둘레를 따라 이어져 있는 물보라길을 걸어 나오면 오름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만나게 된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계단이다. 그러니 물보라길을 먼저 걸으며 몸도 풀고 마음의 평안도 얻은 후에 오르는 것이 좋다.

물보라길은 다양한 풍광을 품고 있다. 그런 탓에 구간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물보라길로 접어들면 처음만나는 길은 자연하천길이다. 대개의 경우 물이 말라있지만 비 내린 후에는 당연히 물이 흐른다. 복과 장수를 약속한다는 복수초가 무리지어 핀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 여유롭고 한가로운 소몰이길을 지나면 푸른 초원이 펼쳐지는 푸른목장초원길이 나온다. 오솔길 지나고 삼나무 빼곡히 늘어선 삼나무숲을 지나면 잣성길이다. 그 길의 끝에 물영아리오름의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걷는 속도와 쉬는 시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런수런 이야기 나누며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 저 숲길을 지나면 물보라길이 시작된다
   
▲ 복수초

해발 508미터인 물영아리오름은 2000년 12월 5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에는 람사르습지 등록되어 보호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산딸나무, 박쥐나무, 생달나무, 참꽃나무, 서어나무, 삼나무, 복수초 등 가득하고 뽕나무버섯, 목이버섯, 콩버섯, 큰낙엽버섯등 여러 종류의 버섯이 자생하고 있다. 곤줄박이, 큰부리까마귀, 동박새, 큰오색닥따구리, 박새, 꿩, 노랑턱멧세, 방울새 등 많은 종류의 새들이 살고, 제주도룡농, 참개구리, 청개구리 등의 양서류와 오소리, 노루 등 포유류들이 살고 있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오름 전체가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습한 땅이라 뱀이 많다. 뱀의 활동이 활발한 시기에는 정상에 오르는 계단 아래로 뱀이 지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너무 겁낼 것은 없다. 사람 보다 뱀이 먼저 놀라 피할 것이니 말이다. 트레일을 따라 걸으면 된다. 분화구의 둘레는 약 1000미터이고 깊이는 정상으로부터 40미터이다. 분화구 호수의 둘레는 300미터이다.

물영아리오름을 찾아 가는 길은 생명의 근원으로 가는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오름은 생명의 근원인 물의 땅이다. 물을 찾아 들어서는 걸음이다. 비 내리지 않을 때는 분화구 호수의 물이 자박자박한 정도로 조금 밖에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미 제 집을 찾아 든 영혼들처럼 위로와 안식과 평안을 얻었으니 말이다.
이 길을 걷기 바란다.
거기 물영아리가 있다.

   
▲ 물영아리오름 분화구의 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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