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 칼럼]

4.13 총선 단상, 여소야대의 국회로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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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이 새누리당의 과반 미달에서 나아가 16년 만의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라는, 예상외의 결과를 낳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반노동자-반민중 정책과 독선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라 할 만하다. 한 동안 총선 결과를 해석하는 다양한 분석들이 제기될 테지만, 한 마디로 정리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패배다. 그 이상 덧붙일 것도 없다.

이에 따라 그동안 진전을 보지 못했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쟁점법안들의 처리가 더욱 어렵게 되었고, 박근혜 정부가 공들여 추진해온 노동개악 입법, 성과주의 압박 및 퇴출제 등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전망이다.

그렇다면 된 것일까? 이번 총선을 이대로 보내기 전에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하나. 우선 여론조사 정치의 문제다. 한 인터넷언론이 현재 여론조사는 보수적인 유권자의 의견을 과잉 대표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쓴 이후 여론조사기관으로부터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지 말라”는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불신과 왜곡을 조장한 것은 여론조사기관이었다. 기술적인 조사 기법상의 한계(표본의 오염, 유선전화 의존),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의 자의적 행정 규제, 낮은 응답률 등으로 인해 여론조사가 빗나갔다는 건 최근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난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와 여론조사로 후보를 단일화한 이래 여론조사는 후보자 공천은 물론 후보 단일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 결과를 예측한 여론조사가 잘못되었다면 그 이전에 여론조사를 통해 공천되거나 단일화된 후보자 역시 제대로 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참고자료에 불과한 여론조사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 자체부터 논란인 셈이다. 문제는 단순한 의견 표명에 불과한 여론조사가 구체적인 의사결정의 수단으로 활용된 결과, 정당의 책임성이 약화되고, 숙의민주주의(deliberate democracy)가 실종된다는 점이다.

‘여론을 모르는’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제고하려는 노력과 함께 엉터리 여론조사가 정치를 좌우하는 양상이 바뀌어야 한다. 덧붙여 선거 때마다 불어오는 북풍, 단순 시위참여자마저 테러리스트로 전락시키는 공안정국에서는 정확한 여론조사가 전제로 하는 진솔한 답변이 결코 나올 수 없다는 점 또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둘. 이번 총선에서 공무원들은 어떠한 참여를 했을까? 직접 후보자로 나선 이들 외에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표를 찍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물론, 투개표에 동원되는 것도 선거 참여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이자 대의정치의 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선거 시기에 오히려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제약당하고,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의 공간이 축소된다. 대표적으로 중앙선관위는 ‘반노동자 정당 심판’이라는 현수막 문구가 정부의 노동개혁 법안추진에 찬성하는 새누리당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새누리당이 반노동자 정당임을 선관위가 공식 인증한 셈이다.

문제는 이런 식이라면 사실상 선거기간 중 노동조합이 정치활동을 할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일상적으로 노조가 쉬운 해고와 노동개악, 성과연봉제 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킬 수 있는 정부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고, 선거기간 중에는 장려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반노동자 정당’ 정도의 정치적 의사표시마저 제한되었다. 공무원에게는 더욱 강한 제약이 가해진다. 그러면서도 엄격하게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대통령은 거리낌 없이 ‘배신의 정치 심판’ 운운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노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시민들의 손발을 묶는 가운데 치러지는 선거에서 유권자들을 표 찍는 기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을 투표나 하는 거수기로 대상화하는 현재의 정치판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또한 보장될 수 있다.

셋. 최종 집계된 20대 총선 투표율은 58.0%로 2004년 17대 총선의 60.6% 이후 국회의원 선거로는 가장 높았다. 특히 접전지로 예상된 지역에서 투표율이 높았는데, 자신들의 투표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 유권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반면 투표 효능감이 낮았던 대구, 부산 등은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까지 겹쳐 투표율이 낮게 나타났다. 이처럼 전통적인 여당 지지층인 중장년층과 영남의 투표율이 저조한 점이 새누리당 패배에 일조하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소득별 투표율은 어떠할까? 이번 총선은 나중에 분석해봐야 하겠지만, 우리나라의 소득 하위 20%의 투표율은 상위 20% 투표율에 비해 30%포인트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선거라는 공간이 저소득층보다는 고소득층의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저소득층은 정치의 장에서 소외되고, 정치를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여기게 되며, 정치과정에서 스스로 물러난다. 이들의 이탈은 민주주의의 약화로 이어지고, 불평등이 더욱더 심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여기에는 장시간 노동과 주변 환경이 주된 요인으로 지적된다. 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선거일마저 출근하여 근무해야 하는 판국에, 투표할 시간이나 정책/공약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게 정치에서 멀어진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 거기에서부터 정치가 시작된다. 여소야대의 국회가 그 실마리라고 할 수는 없다. 정치를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정치가 가진 효능감을 느끼고 정치의 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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