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단기적 성과에 급급한 또 하나의 '냄비 정책'

한국형 알파고 투자 전략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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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이세돌 9단의 ‘세기의 바둑대결’ 열풍이 밀어닥치자, 정부에서 뭔가 대책이 나오겠구나 예상했던 이는 나만이 아닐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인공지능(AI) 총괄팀’을 새로 만들어 가동했다는 소식이 들리기가 무섭게 미래창조과학부가 국내 인공지능 산업을 총괄하는 전담팀을 신설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급기야 ‘지능정보사회 민관합동 간담회’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인공지능 중심의 4차 산업혁명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자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인공지능 산업 육성에 향후 5년간 총 1조원을 투자하고, 2조 5,000억 원 이상의 민간 투자도 유도하며, 올해 예산 300억 원을 들여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K-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는 ‘지능정보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에 박 대통령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이번 알파고 쇼크를 계기로 더 늦기 전에 인공지능 개발의 중요성에 대해서 큰 경각심과 자극을 받은 것이 역설적으로 상당히 행운”이었다면서, “컨트롤타워 기능의 취약성을 해결해서 R&D(연구·개발) 투자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자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신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분위기에 편승하여 이러한 ‘한국형 ○○○’을 추진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판 카길, 한국형 안드로이드, 한국형 유튜브(K-튜브), 한국형 닌텐도,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등…. 대부분 이슈가 되었을 때 추진한다고 공언했다가 예산만 낭비하고 사라진 정책들이다. 한국형이라 하지는 않았지만, 4대강 수질조사용으로 로봇물고기 개발사업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과연 한국형 알파고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변하는 이는 거의 없다. 구글은 2001년 이후 인공지능 관련 기업을 인수하는 데만 33조원이 넘게 투자했다고 한다. 하지만 1996년 이후 우리 정부의 인공지능 관련 투자액은 5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이제부터라도 통 크게 투자하면 되는 것일까.

▲ 1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지능정보사회 민관합동 간담회'. 사진 = 청와대
▲ 1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지능정보사회 민관합동 간담회'. 사진 = 청와대

미래를 내다보며 뭔가를 할라치면 “그거 돈 되는 연구냐” 같은 소리를 하면서 ‘단기적인 성과주의’와 ‘경제적인 이윤추구’를 우선시하는 사회풍토에서, 최근 성과연봉제 도입 논란에서 드러나듯, 이런 분위기를 신자유주의 정부가 이끌고 가는 상황에서, 한국형 알파고 추진은 또 하나의 ‘냄비 정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전문인력 양성에서부터 시작하겠다는, 비전과 사람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는데, 돈만 들이붓는다고 해결되지는 않는 것이다.

더욱이 알파고를 개발한 사기업인 구글만 해도 인공지능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대한민국 정부의 비전은 기껏 전략산업 육성이 전부다.

한편, 과학기술전략회의 신설방안 또한 문제가 많다. 박 대통령은 현재 국가과학기술심의회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지만 조정 역할에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신설되는 과학기술전략회의가 핵심 과학기술 정책과 사업, 부처 간 의견 대립 사안을 톱다운 방식으로 전략을 마련하고 조정 역할을 수행하면서 R&D 시스템의 근본적 혁신을 추진해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1월 박근혜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미래창조과학부가 국가 과학기술 전 단계의 연구개발 기능을 총괄하면서, 이에 필요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R&D 예산 배분권도 사실상 확보하여, 예산과 정책 기능이 집중된 국가 ‘R&D 컨트롤타워’로서 출범했다. 당시에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의 역할에 대한 논의도 없었다.

그런데 세기의 바둑대결이 끝난 지 이틀 만에 R&D의 효율화를 위해 대통령 과학기술전략자문기구로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신설하겠단다. 이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뿐만 아니라 그간의 미래창조과학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반증일 텐데,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R&D 컨트롤타워를 새롭게 구축하기에 앞서 그 역할을 하라고 출범한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긴 이 정부에게 엄정한 평가에 기초한 대안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인지도 모른다. 이미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조직 개편과정에서 탄생한 행정자치부, 국민안전처, 인사혁신처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를 지켜보며 충분히 경험하였으니까. 지금까지의 정부조직 개편안 대부분이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계획에 의하기보다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단기적이고 즉흥적으로 추진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리 새롭지도 않다. 그나마 신자유주의적 작은 정부론에 입각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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