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을 오르다17] 한라산 주봉의 서쪽 아고산 지대에 펼쳐진 윗세오름

'비움'으로 평안과 평화를 이룬 땅, 윗세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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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남 작가
▲ 최창남 작가

어리목에서 윗세오름을 향했다. 눈 덮인 숲은 드러내지 않았던 아름다움을 뽐내기라도 하려는 듯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늘어진 가지들도 아름다웠다. 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저만의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슬프고 설레고 황홀했다. 땅에 닿을 듯 늘어진 가지들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어 땅 속 깊이 묻어 두었던 슬픔들에 닿아 있는 듯했고, 제 몸보다 더 많은 눈을 이고 달고 있는 가지들은 이 숲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  눈의 나라라는 것을 몸으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가지들은 하늘 또한 저들의 세상이라는 듯 하늘조차 하얗게 덮고 있었다. 나뭇가지 비추인 맑은 호수에 드리운 하늘같았다. 하늘이 땅이고 땅이 하늘이었다. 하늘에 눈 덮인 겨울 숲이 자라고 있었다. 황홀지경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슬픔과 설렘이 함께하고 하늘과 땅이 구별되지 않는 그런 세계. 슬픈 설렘이라고 할까. 황홀한 슬픔이라고 할까. 바람 타는 섬의 눈 덮인 겨울 산은 그런 것들로 가득했다.

햇살 드리우자 가지의 눈들이 투두둑 떨어졌다. 마치 숲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는 듯했다. 반갑게 맞아주는 듯 정겨웠다. 설렘으로 즐거웠다. 며칠 전 새벽에 꾸었던 꿈속으로 다시 들어간 듯하였다. 이른 새벽 설핏 잠에서 깼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길에 있었다. 길을 가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풍경이 희한하고 신비로웠다. 산인데 산 아닌 것들이 길가에 있고, 돌인데 돌 아닌 것들이 냇가에 있고, 바람인데 바람 아닌 것들이 불어오고 있었다. 나무인데 나무 아닌 것들이 서 있고, 꽃인데 꽃 아닌 것들이 피어 있었다. ‘아닌 것’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이것인지 저것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모두 한 길에 있었다.

▲ 눈 덮인 숲길, 어리목 구간
▲ 눈 덮인 숲길, 어리목 구간

도저히 함께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을 뿐 아니라 너무나 아름답기까지 하였다. 사람들이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다’라고 구분하고 정해 놓은 것들을 넘어서 모든 것이 하나인 세계였다. 서로 다른 것들조차도 다른 것이 아니라 사물의 다른 면, 존재의 다른 얼굴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대체 이런 꿈을 왜 꾼 것일까. 꿈이 현실로 변화되고, 길이 숲으로 달라졌을 뿐 마치 그 새벽의 꿈속에 들어 있는 듯하였다. 꿈같이 조화롭고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숲길로 들어갔다.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사이에 길이 열렸다. 사제비동산이었다. 벌써 2.4킬로미터나 왔다. 2.3킬로미터만 가면 윗세오름 산장이었다. 열린 길 위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잔잔한 바람이 시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들어오는 오름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서있었다. 노루오름, 바리메오름, 큰노꼬메와 작은노꼬메오름 그리고 붉은오름과 쳇망오름이 그려져 있었다.

“저 오름들 중 붉은오름과 쳇망오름은 가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붉은오름보다는 쳇망오름을 가보고 싶어요. 저기 분화구가 도너츠처럼 생긴 것이 쳇망오름인데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어요.”
“검색해 보면 나올 것 같은데… 길을 찾아 함 가 보지요… 아마 찾을 수 있을 거에요.”
“아마도 반듯하게 나 있는 길은 없겠지만 갈 수는 있겠지요. 가까이 보이니 한라산이 품고 있는 오름이겠지요?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지… 아무튼 찾아보세요. 날 정해서 함께 가 봐요.”

우리는 시골 툇마루에 앉아 햇살을 즐기는 노인들처럼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서서 한가로이 수다를 즐겼다.

▲ 윗세오름 이정표
▲ 윗세오름 이정표

윗세오름을 향했다. 윗세오름은 어리목과 영실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산장 부근에 있는 오름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영실코스에 있다. 한라산의 주봉인 부악(釜岳)의 서쪽 아고산 지대에 나란히 펼쳐져 있는 세 개의 오름이 윗세오름이다. 윗세오름은 ‘위에 있는 세오름’이라는 뜻이다. 천백고지 쪽에 삼형제오름이 있는데, 그 삼형제오름과 구별하기 위해 윗세오름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윗세오름은 제각기 이름을 지니고 있다. 윗세오름 산장에서 영실코스로 내려가며 가장 먼저 보이는 붉은 흙이 드러나 있는 오름이 붉은오름(1740미터)이고, 노루샘 바로 위에 길게 누워 있는 오름이 누운오름(1711미터)이고, 그 아래 있는 것이 족은오름(1609미터)이다. 이 윗세오름의 아고산지대를 ‘선작지왓’이라고 부른다. ‘작지’는 ‘자갈’을 뜻하고, ‘왓’은 ‘밭’을 일컫는 제주말이다. 그러니 선작지왓은 크고 작은 돌들이 많은 밭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은 봄철에는 산진달래로 붉게 물들어 장관을 연출한다.

▲ 만세동산에서 바라본 어리목 코스(여름)
▲ 만세동산에서 바라본 어리목 코스(여름)
▲ 영실코스. 선작지왓(여름)
▲ 영실코스. 선작지왓(여름)

산진달래 뿐 아니라 누운향나무, 백리향, 시로미 등의 군락도 만날 수 있다. 한마디로 하늘의 기운이 서려있는 천상의 세계이다. 그 아름다움을 형용할 길이 없다. 어떤 형태를 갖춘 아름다움이 아니다. 윗세오름의 아름다움은 비움의 아름다움이다. 자기를 다 비워 평안과 평화를 이룬 땅이다. 들어오는 이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수용의 땅이고 용서의 땅이다. 자기 비움의 땅이다. 그래서 이 땅에 들면 말할 수 없는 평안함을 느끼며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자신조차도 용서하게 된다. 평화의 땅이다. 살림의 땅이다. 조화와 상생의 땅이다.

우리는 그 땅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골마다 피어오른 운무들이 윗세오름을 지나며 산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그 황홀한 아름다움에 절로 걸음 멈추었다.

▲ 피어오르는 운무
▲ 피어오르는 운무

저 하늘을 어쩌란 말인가.
어쩌자고 저 하늘은 저리 푸르고 구름은 저리 흐른단 말인가.

옛 사람들에게 있어 산은 신들의 땅이었다. 특히 산의 정상 부근은 신들이 머무는 신들의 땅이었다. 생명을 품어 키우고 살리는 하늘의 지혜가 깃드는 곳이었다. 단군이 산으로 내려오고 죽어서도 산으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산에 들어가 기도를 하여 아기를 점지 받았다는 이야기도 모두 이런 세계관이 기인된 것이다. 그래서 민족의 영산이라는 백두산은 이름이 ‘지혜의 머리가 되는 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백두산’이 된 것이고, 분화구의 못도 ‘하늘의 못’인 ‘천지’(天池)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같은 이유로 지리산의 최고봉은 ‘하늘의 봉우리’인 ‘천왕봉’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천왕봉 바로 아래 ‘하늘로 들어가는 문’인 ‘개천문’과 ‘하늘로 통하는 문’인 ‘통천문’이 있게 된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 산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의 지혜와는 다른 종류의 지혜를 품고 있는 산’이라는 의미를 담은 ‘지리산’(智異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산들의 정상 부근은 신들이 머무는 신성한 땅이었다. 그래서 인간들은 들 수 없는 영역이었고, 감히 들어서도 안 되는 땅이었다. 한라산 역시 그러하다. 한라산은 ‘한’(漢)은 ‘은하수’를 뜻하고, ‘라’(拏)는 ‘붙잡다, 끌어당기다’라는 뜻이다. 그러니 한라산이라는 이름은 ‘은하수를 붙잡을 수 있는 높은 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은하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높다’는 의미는 단지 높이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들의 영역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산의 정상 부근인 백록담 부근은 하늘에 속한 신의 영역이다. 분화구에 형성된 못의 이름이 백록담이 된 것도 그 곳이 신들의 땅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흰 사슴이 물을 마시던 못’이라고 해서 이름이 그대로 ‘백록담’이 되었다. 신선들이 흰 사슴을 타고 다니며 은하수를 낚아채기도 하는 곳이 어찌 사람의 영역일 수 있겠는가.

우리는 백록담 주변과는 달리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이 허락된 땅인 윗세오름으로 들어갔다. 지나는 이들이 제법 많았음에도 초원은 고요했고 바람은 잔잔했다. 하늘은 눈 덮인 호수처럼 맑았다. 잔잔한 바람에도 구름은 흐르고 산은 변화하고 있었다.

▲ 윗세오름 산장 앞(여름) 사진 = 홍성수
▲ 윗세오름 산장 앞(여름) 사진 = 홍성수

산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지붕 위에서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햇살 그윽한 자리에 자리를 잡고 컵라면을 사왔다. 우리는 별 말 없이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겨울철이라서 그런지 여름철과 달리 큰까마귀가 많지 않았다.

“이제 드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컵라면 뚜껑을 열자 김이 피어올랐다. 그 모습이 꼭 구름 같았다.
“김이 꼭 구름 같네.”
“하하, 그러게요.”
“김이면 어떻고 구름이면 어때요… 어차피 흘러 사라지는 것인데요… 나는 유언을 남겨 놓았어요… 화장을 한 후… 아주 조금만 가져다가 윗세오름에 뿌려 달라고… 나는 이 땅에 남고 싶어요…. 이 땅의 구름 속에 머물고 바람을 따라 흐르며 이 산에 머물고 싶어요…. 다 비울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그 욕심만은 잘 안 비워지네요. 하하….”

한 해 전 겨울 겪었던 체감온도 영하 30도의 추위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일이라는 듯 아직 겨울 지나지 않은 2월 중순인데도 날 참 따뜻했다. 한가로이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누워 한 숨 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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