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오늘날 여성 노동자의 노동 조건, 과거보다 나아진 것 무엇인지?

‘3.8 세계 여성의 날’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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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희(여성학자)
▲ 김양희(여성학자)

올해 또다시 3.8 ‘세계 여성의 날’이 돌아왔다.

세계 여성의 날은 지난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섬유 노동자 1만5천여 명이 노동환경 개선,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하여 제정됐다. 당시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 환경, 극심한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여성 노동자들이 대거 결집해 벌인 시위가 3.8 여성대회의 시작이다.

당시 시위에 나선 여성들은 ‘빵과 장미를!’이란 구호를 들고 가두행진을 벌였다. ‘빵’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노동권’에 대한 요구였고, ‘장미’는 같은 인간으로서 똑같은 권리를 누리겠다는 보편적 ‘인권’의 선언이었다.

당시 여성들에게는 참정권이 없었다. 이는 정치인이 되어 정치에 뛰어들 수도, 정치인에게 투표를 할 수도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 시대적 상황에서 시위에 나선 여성들의 용기 있는 행동 덕분에 이후 미국의 여성운동은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고, 미국 여성 노동자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며 매년 3월 8일을 기념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올해 여성의 날을 맞이하는 심정이 착잡하기만 하다. 여성의 현실이 예전보다 월등히 나아져 마치 오래된 앨범에서 추억의 사진을 꺼내보는 것처럼 여성의 날을 맞이하고 싶은데, 오히려 현실은 ‘예전보다 나아진 게 과연 무엇인가’ 싶은 비관적인 마음이 들게 만든다. 당시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소리 높여 주장했던 노동조건과 노동환경 개선이 과연 오늘 우리나라 여성 노동자들에게 먼 나라 얘기처럼 여겨지고 있는가하면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13년째 OECD 국가들 가운데 남녀 임금격차 1위 국가로서, 남성들이 1000원 벌 때 여성들은 평균 630원 정도를 받는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의 60%이상이 여성들이다. 지난해 50대 여성 취업률이 사상최고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사실상 전형적인 저임금 서비스 일자리인 경우가 많다.

▲ 지난 2014년 3월 8일,서울 보신각 공원에서 열린 '106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 대회 후, 대회 참가자들의 가두 행진을 하고 있다.
▲ 지난 2014년 3월 8일,서울 보신각 공원에서 열린 '106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 대회 후, 대회 참가자들의 가두 행진을 하고 있다.

임신, 출산, 육아 등을 이유로 가정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일자리 시장으로 나온 경력단절 여성들은 백화점이나 할인마트 판매원 또는 계산원, 학습지 교사, 식당 조리 및 종업원, 콜센터 직원, 보험판매, 청소원, 가사도우미, 간병인, 노래방 점원, 공장 노동자 등의 직종에서 시간제, 반일제, 종일제에서부터 개월 단위, 연단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임시직, 계약직 노동자로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 서비스업의 하층부를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여성 노동자들의 저임금이 정당화되는 근거에는 ‘여성의 일은 집안일’이고 집안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무임금, 또는 저임금의 일이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있다. 일례로, 우리 아파트의 청소원 아주머니는 점심이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밥을 해서 경비원 아저씨에게 밥을 차려준다. 보통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에는 경비원과 청소원들의 휴식공간이 있기 마련인데, 청소원 아주머니들이 그곳에서 경비원 아저씨들에게 밥을 해주는 것이다.

아주머니들이 차가운 도시락대신 따뜻한 점심밥을 지어 먹는 것은 좋지만, 새벽부터 아파트 청소 노동에 시달린 아주머니들이 점심밥까지 경비원 아저씨에게 차려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역시, 밥짓는 것은 여성의 일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니, 기왕 네 밥 지어 먹을 때 나도 같이 먹자고 하는 논리가 적용된다. 아파트 남성 경비원은 여성 청소원 위에 있다. 누구 하나 여기에 대고 부당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여, 3.8 세계 여성의 날을 옛날 얘기라고 덮어두지 말았으면 한다. 오늘 비정규직, 계약직으로 대한민국 서비스업의 하층부를 담당하고 있는 여성들이 210년전 미국 여성 노동자들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가난한 여성 노동자들은 ‘빵과 장미’를 손에 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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