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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인들의 恨과 숨결이 깃든 '아부오름'[오름을 오르다 15] 제주 구좌읍 아부오름
최창남 작가  |  gnews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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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2.04  10: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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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남 작가

육십년 가까이 살아온 육지를 버리고 섬에 들어 온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제작년 2월에 방 한 칸 얻어 살기 시작 할 때 주소를 이전하였으니 설 지나면 정확히 2년이다. 그 해 4월 말에는 섬의 동쪽에 자리를 잡고 낯선 땅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제주의 동쪽은 바람 타는 섬 제주에서도 가장 바람이 많은 곳이다. 눈 닿는 곳마다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을 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바람을 유난히 좋아하였던 내게 바람 많은 섬 제주는 설렘의 땅이었다. 지난 날 그저 관광객으로 이 섬을 지날 때는 바람 많은 곳을 찾아다녔다. 바람을 맞을 때면 말할 수 없는 쾌감에 젖거나 황홀경에 빠지곤 했다. 내 몸 속 어딘가에 떠나고 싶으나 떠나지 못하고 있는 바람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바람은 이 섬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여러 가지 이유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2년이라는 시간을 지내는 동안 나는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바람을 맞을 때마다 설렘으로 들뜨고 황홀경에 빠져 드는 것은 여전하였으나 몸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무에 바람 들듯 몸에 바람이 든 것 같았다. 몸 안에 바람길이 생긴 듯 바람 불어오면 몸속에서 ‘휘잉~’ 바람 지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추운 겨울 날 강한 바람이 여러 날 불어오기라도 하면 뼈속에서도 들려오는 듯했다. 제주의 바람이 이렇구나. 이렇게 무섭구나. 기온은 영상이지만 영하 10도가 넘는 육지 보다 체감온도는 훨씬 낮은 듯했다. 몸 안에서 이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조금씩 이 섬을 느끼고 있었다. 몸 안에서 이는 바람소리가 거세질수록 수십 년 수백 년 이 섬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바람 많은 이 섬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어린 시절 듣던 ‘삼다도라 제주에는…’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이 노래는 제주는 낭만적인 섬이라는 환상을 내게 심어주었다. 사실 말이 좋고 듣기 좋아 돌 많고, 바람 많고, 여자 많은 삼다도이지 삼다도란 얼마나 처참한 삶을 드러내주는 말인가. 고려 말 최영 장군의 묵호의 난 진압 때부터 죽어나가기 시작한 이 섬의 남정네들은 조선이 세워진 이후에도 온갖 부역에 시달리다 죽어 나가기도 하고 민란에 엮여 죽기도 하였다. 일제 36년 겨우 겨우 살아남은 남정네들은 4.3사건으로 다시 또 떼죽음을 당하여 섬에는 여자들만 남게 되었다. 아비가 죽은 집도 있고, 남편이 죽은 집도 있고, 아들이 죽은 집도 있고, 두루두루 굴비 엮이듯 모두 죽은 집에 남은 아낙네들은 살아남기 위해 밭을 일구려 했으나 돌이 많으니 농사를 짓기도 힘들고, 물고기를 잡으려 해도 바람이 심하니 배를 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니 그 바람 속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섞여 있을 것이란 말인가. 제주의 바람에는 그 눈물과 고단함과 탄식이 서려 있다. 그래서 제주의 바람은 가슴을 시리게 한다. 시린 바람이다.

   
▲ 아부오름 입구, 사진 = 고경대

아부오름으로 들어갔다. 오후 내 잔잔하던 바람이 저녁이 가까워지며 세차게 불어왔다. 조금씩 흩뿌리던 눈발이 바람에 휘날린다. 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살이 비취는 것을 보니 눈이 많이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바람 사이로 아부오름에 드니 홀로 선 폭낭(팽나무)이 눈에 들어온다. 아부오름에 들 때마다 마음 나누어주던 나무이다. 폭낭은 제주의 바람을 품고 있는 나무이다. 나뭇가지들마다 바람 지나고 머물었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폭낭은 제주의 삶이 된 나무이기도 하다. 굴절 많았던 섬사람들의 삶이 비틀리고 뒤틀린 가지마다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그래서 제주사람들은 폭낭을 사랑했고 곁에 두었다. 폭낭은 섬의 정자나무이다. 육지의 정자나무는 대부분 느티나무이지만 제주의 정자나무는 폭낭이다. 어떤 이들은 그 이유를 느티나무는 최상의 목재여서 쓰임새가 많았던 반면 폭낭은 쓰임새가 적어 살아남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폭낭이 제주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그런 이유만은 아닐 듯싶다.
아부오름의 폭낭은 언제 봐도 슬픔을 머금은 듯 아득하고 아름다웠다. 구름 사이로 드러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장동건과 고소영이 주연을 한 ‘연풍연가’라는 영화의 엔딩 장면을 이 나무 아래서 찍었다고 한다. 그 탓인지 바람 세차고 눈 흩뿌리고 있건만 하얀 원피스를 차려 입은 아가씨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고 있다. 나는 영화를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그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나무 아래 잠시 머물러 보시기 바란다.

   
▲ 아부오름 초입에 있는 폭낭

아부오름은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64-1번지에 있다. 송당마을의 남쪽 2킬로미터 지점이다. 아부오름을 네비게이션에 입력만 하면 되니 찾아가는 것은 간단하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오름 입구와 표지석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건영목장 안에 오름은 자리하고 있다. 아부오름은 어린 시절 시골의 둔덕처럼 오르기 쉽다. 그래서 친근하게 느껴진다. 표고는 301.4미터라 하지만 실제 걸어 올라가야 하는 거리인 비고는 대략 50미터 정도이다. 경사도 완만하다. 둔덕을 오르는 느낌으로 천천히 걷다 보면 이내 정상에 도달한다. 하지만 마루금에 올라서면 올라올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에 놀라게 된다. 높이 50미터 정도의 둔덕과 같은 오름이 품고 있는 풍경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깊고 넓은 분화구만 보면 수백 미터가 넘는 가파른 오름을 올라온 것만 같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아부오름은 분화구이다. 분화구 자체가 오름이다. 분화구의 바깥둘레는 약 1400미터이고, 바닥둘레는 500미터이다. 분화구 바닥에는 마치 성소를 감싸는 듯 삼나무들이 원을 그리며 늘어서 있다. 그 모습이 경이롭다.

   
▲ 아부오름 분화구 전경

아부오름을 처음 찾았던 두 해 전 여름에는 부슬비 내리고 있어 오름은 안개로 덮여 있었다. 분화구 안에도 안개 가득했다. 바람 지나며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안개 사이로  원을 그리며 둘러선 커다란 삼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소리 죽여 낮고 짧게 탄성을 지르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성스럽고 신비로운 장소에 와 있는 듯했다. 다른 차원의 세계와 현세를 이어주는 차원의 문이 거기 있기라도 하다는 듯, 아무도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듯 삼나무들은 빙 둘러서 있었다.

분화구의 깊이는 78미터이다. 오름의 높이가 50미터이니 산 보다 분화구가 더 깊다. 산이 있는 지면 보다 28미터 더 깊다. 이 땅의 비밀에 조금이라도 다가서겠다는 듯 몸을 한껏 들이민 듯하다. 그리고 보면 아부오름은 하늘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을 향해 있다고 말해야 할 듯하다.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만들 때 너무 뾰족한 봉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손으로 쳤더니 봉우리가 날아가 산방산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부오름은 봉우리를 손으로 친 것이 아니라 발로 밟은 것이 아닌가 싶다. 지면 보다 28미터나 더 깊이 분화구가 내려앉았으니 말이다.

   
▲ 아부오름의 아침, 안개 서린 분화구의 삼나무 숲, 사진 = 고경대

아부오름의 원 이름은 앞오름인 듯하다. 제주어에서 ‘앞’은 전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쪽’을 의미하고, ‘뒤’는 ‘북쪽’을 의미한다. 앞오름은 송당의 남쪽에 있다. 그러니 앞오름은 송당의 남쪽, 본향당이 있는 당오름의 남쪽에 있는 오름이라는 의미이다. 그 이름 속에 오름의 있는 위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헌의 기록으로 볼 때 ‘앞오름’이 맞는다 하더라도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이 오름을 ‘아부오름’이라고 불렀고 또 그 이름을 저마다 받아 들여 오늘날까지 부르고 있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오름의 앉은 모양새가 아버지가 좌정한 것처럼 듬직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아부오름의 ‘아부’는 ‘아버지’ 혹은 ‘아버지 다음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앞오름이 아부오름이 된 것은 아버지도 잃고, 남편도 잃고, 아들도 잃어왔던 이 땅 여인들의 바람 때문이 아닐까. 아부오름이라는 이름에는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을 그리워하는 이 땅 여인들의 바람이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세찬 바람에 모자가 벗겨질 듯 했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분화구 둘레를 걸었다. 첩첩이 늘어선 오름들이 마치 아부오름을 둘러싸고 있는 듯 하다. 마치 늙은 아버지를 호위하고 있는 장성한 아들, 딸들 같다. 높은오름도 보이고, 백약이오름도 보이고, 민오름도 보인다. 멀리 한라산도 보인다.

바람 많은 이 섬에 홀로 남겨진 여인들의 아픔과 한과 숨결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 그저 둔덕 같은 이 오름의 이름이 ‘아부’가 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아부’라는 이름  안에 담겨 있는 의미가 느껴져 가슴이 아려온다. 눈물 어린다.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아픔이 없는 곳이 없고, 피눈물이 서려 있지 않은 곳이 없는 땅이다. 그런 아픔과 눈물들이 이 땅 구석구석에 그대로 베어 있다. 그래서 제주는 더더욱 아름다운 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한숨은 바람 되어 사방으로 흐르고, 그 눈물은 바다 되어 옥빛으로 빛나고 있는 것일테니 말이다. 어쩌면 이 섬의 숲들이 그리 깊고, 나무들이 무성한 것도 이런저런 역사의 변곡점마다 쓰러져간 이들의 몸이 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옷깃 여미며 바람에 쫓겨 내려오는 등 뒤로 해 기울고 있었다.
노을 드리우며 저녁 오고 있었다.

   
▲ 아부오름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다, 사진 = 고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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