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을 오르다 15] 신들의 땅, 동검은이오름

신들이 머물던 땅에서 비움의 지혜를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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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남 작가
▲ 최창남 작가

동검은이오름을 향했다. 다섯 번째 걸음이었다. 봄과 가을, 여름과 겨울을 지나는 동안 걸음을 하였고 작년 여름인가 한 번 더 들었었다. 동검은이오름과 나는 기묘한 인연으로 엮여 있는 듯했다. 알려지지 않은 오름을 찾아 갈 때는 길을 찾지 못해 서성이기도 하고 어렵게 찾아 들었다가도 숲 우거진 산 속에서는 돌아 나오는 길을 놓쳐 왕왕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동검은이오름은 숲이라 할 것도 없고, 잔디와 잡풀들뿐이어서 길이 훤히 보이는데도 세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길을 잃었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지는 노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을 따라 가다 북서면 쪽 무덤이 많은 곳으로 내려오게 되어 숲 우거진 낯선 길에서 헤맸다. 두 번 세 번째 들었을 때에는 오름의 정상에서 길을 따라 걸으면 당연히 들어온 입구로 돌아 나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탓에 길을 잃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두 번째에는 북동쪽 입구로 나가게 되었고, 세 번째에는 길이 끊어져 길 없는 숲길을 헤치며 들어온 입구로 나가느라 고생하였다. 들어온 입구로 나가려면 오름을 이루고 있는 네 개의 봉우리를 돌아 들어온 길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다른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도 당연히 들어온 입구가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니 당연히 제 길을 찾을 수 없었다. 확신대로 하였는데 번번이 길이 어긋나 헤매게 되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일지만 그렇게 길 잃기를 되풀이 하였다. 언제인가 제주가 고향인 벗에게 동검은이에서 길을 두 번, 세 번이나 잃었다고 말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고 이해 안 되는 일이니 벗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 굼부리에 있는 무덤
▲ 굼부리에 있는 무덤

동검은이오름에서 세 번이나 길을 잃는다는 것은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내게 일어난 것은 그저 나의 실수였던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어떤 가르침이 숨어있는 것이 아닐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물론 아직도 왜 그런 일이 반복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답도 찾지 못하였다. 다만 잠시 신들의 손길이 닿았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신들이 머물던 땅이니 이곳에 들 때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동검은이오름은 신의 땅이다. ‘동검은이오름’이라는 이름은 ‘신의 산’ ‘동쪽에 있는 신의 산’이라는 의미이다. 이 오름은 다른 오름들과 달리 형상이 기기묘묘하다. 정상에 올라 보면 4개의 봉우리가 뚜렷한데 그 생김새와 높낮이가 확연히 다르다. 뿔처럼 불쑥 솟은 것도 있고 바가지처럼 둥근 것도 있다. 굼부리도 우물처럼 깊은 것도 있고 개울물처럼 얕은 것도 있다. 높이와 형태가 다른 봉우리들을 잇고 있는 길이나 굼부리들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여 이 오름은 신비롭고 기묘한 느낌을 준다.

오름의 정상에 올라 보면 그 모양들이 첩첩히 늘어서며 사면으로 뻗어나갔는데 그 모습이 거미집과 비슷하다고 하여 거미오름으로 불려왔다. 그래서 어떤 기록에는 거미 주자를 써서 주악(蛛岳)이라고 표기한 곳도 있다. 하지만 이는 원래의 이름은 아닌 듯하다. 오름의 생김새를 따라 마을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지역에 검은 오름이라는 이름을 지닌 오름이 여럿 있다 보니 차별성을 부여하기 위해 거미오름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불렀던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다른 지역에 ‘검은 오름’이라는 이름을 지닌 오름이 많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이 이름에 더 큰 의미와 무게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 동검은이오름 전경 사진 = 고경대
▲ 동검은이오름 전경 사진 = 고경대

동검은이오름은 동거문악(東巨文岳, 東巨門岳, 東巨文伊岳)으로 표기 되어 있는데 이는 ‘검은’의 소리를 따라 표기한 것이다. ‘검은’의 ‘검’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이는 고조선시대부터 내려온 말로 ‘신’(神)을 의미한다. 제주에는 검은오름이라는 이름의 오름들이 여럿 있다. 이 오름들에 쓰인 ‘검은’ 역시 같은 의미의 말이다. 물찾오름이라고도 불리는 검은오름도, 조천읍 선흘리와 구좌읍 송당리의 경계에 있는 서검은이오름도, 조천읍 교래리와 표선면 가시리 경계에 있는 검은이오름도 마찬가지이다.

‘검’이라는 단어가 쓰인 이름이 제주의 오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산 지명에도 ‘신’의 의미를 지닌 ‘검’자가 쓰인 곳이 여럿이다. 백두대간 산줄기인 구룡산에서 신들에게 제사 지내던 태백산으로 나아갈 때 지나던 고개가 있는데 그 이름이 ‘곰넘이재’이다. ‘곰’은 ‘검’에서 나온 말로 ‘신’을 의미한다. 곰넘이재를 곰 웅자를 써서 ‘웅현’(熊峴)이라고 한 것은 뜻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소리만 빌려온 것이다. ‘웅현’의 우리말은 ‘곰재’ 혹은 ‘검재’이니 곧 ‘신령’이다. 즉 곰넘이재는 ‘신에게 나아가는 고개’이다. 옛사람들은 그 고개를 지나 큰 지혜 머무는 태백산으로 나아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그 태백산을 지나 산줄기 이으면 함백산이다.

함백산은 그 이름에 태백산이에 깃든 큰 지혜를 널리 펼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함백산에는 우리나라 제일의 야생화 군락지와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를 품고 있는 금대봉이 있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금대봉이 보통 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금대봉은 생명을 품어 키우고 살리는 하늘의 지혜를 세상에 전하는 은총 깃든 생명의 산인 것이다. 금대봉의 ‘금대’ 역시 ‘검대’와 같은 말이다. 즉 금대봉은 ‘신이 머무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신의 땅인 것이다.

이 땅의 수많은 신들 중 가장 큰 신이 산신이다. 그래서 단군왕검도 산으로 내려오고 죽어서는 산신이 되었다. 그러니 설문대할망이 섬 자체라고 할 수 있는 한라산을 만들고 오름들을 만들었다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 산신들이 백두대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라산에도 오름들에도 머물렀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머물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 하겠다.

신들 머물던 땅이어서 그랬을까.
어쩌면 지금도 신들이 머물고 있을지도 모르는 땅이어서 그랬을까.
내게 동검은이오름은 언제나 신비로웠다. 능선마다 봄꽃 피고 구름 낮게 드리운 것도 신비로웠고, 비 내리고 안개 깊어 봉우리와 굼부리가 꿈결인 듯 아스라한 것도 신비로웠다. 바람 드세 걷는 것은 고사하고 몸 가누기도 힘들던 순간들도 신비로웠고, 마른 잔디 위로 눈 내리는 것을 보는 것도 신비로웠다.

어디 신비로운 것이 이런 것들 뿐이겠는가. 다른 오름들과 달리 여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것도 신비로웠고, 굼부리가 셋이나 있는 것도 더더욱 신비로웠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똑같은 모양의 화구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깔때기처럼 깊고 삼태기처럼 넓고 터진 형태가 두루 있는 복합형 화구이다. 능선과 오름의 경사면이  잔디밭인 것과는 달리 이 굼부리들에는 잡목들 무성해 울창하다.

동검은이오름은 행정구역으로 보면 구좌읍 종달리에 속하며 성산읍과 표선면과의 접경지대에 있다. 표고 340미터, 비고 115미터로 그리 높지 않은 오름이지만 서쪽에 위치한 주봉은 피라미드처럼 불쑥 솟아있어 가파르다. 원 이름은 검은오름인데 송당리 서쪽에도 검은 오름이 있어 구분하기 위해 송당리에 있는 것을 서검은이오름, 종달리에 있는 것을 동검은이오름이라 부른다.

이 오름에 가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백약이오름을 찾아가는 것이다. 백약이오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을 건너면 문석이오름과 동검은이오름을 가는 길이다. 이정표가 있으니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억새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 가다보면 다시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왼쪽은 문석이오름, 오른쪽은 동검은이오름을 가는 길이다. 동검은이오름을 바라보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내 동검은이오름 들어가는 입구이다.

날 맑았다. 하늘은 눈부실 정도로 파랬다. 가파른 길을 지나 봉우리에 올라서자 바람이 땀을 식혀 주었다. 아, 좋구나. 백약이오름, 좌보미오름, 아부오름, 높은오름, 용눈이오름, 손지오름 등 오름들 첩첩하고 바람 겹겹하여 오름인지 섬인지, 하늘인지 바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오름들은 섬 같고 하늘은 바다 같았다. 아니 섬들 들어와 오름이 되고 바다가 올라가 하늘이 된 것 같았다. 나아감과 물러섬의 차이가 없고, 앎과 모름의 경계가 없고, 삶과 죽음은 하나인 듯 했다.

참 좋지요...?
어쩌면 이리 좋을까요...?

우리는 말을 채 잇지 못한 채 바라만 보았다. 굳이 말이 필요치 않았다. 굼부리 쪽을 보니 소들 한가로이 풀 뜯고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니 손 뻗으면 닿을 듯 소들이 지척이었다. 소들이 오가는 탓인지 노루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 지나지 않고 소들조차 보이지 않는 날에는 노루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가족끼리 무리지어 다니기도 하고 나처럼 홀로 다니는 놈도 볼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섰지만 소들은 촉촉하게 젖은 큰 눈 꿈벅이며 선한 얼굴로 잠시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이내 고개 돌려 풀 뜯는데 열중하였다. 손 뻗어 만져 보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다소 조심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그들의 평화를 깨뜨릴까 저어되었기 때문이었다.  굼부리 한 쪽에 자리하고 있는 무덤가의 돌담 앞에 앉아 소들을 바라보았다.

▲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 사진 = 윤태웅
▲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 사진 = 윤태웅

저렇게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숨결만으로도 기쁘게 제 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나 자신을 비우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아는 것이라고 다 말하지 않는 것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다 하지 않는 것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다 얻지 않는 것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다 가지지 않는 것
주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다 주장하지 않는 것
품을 수 있는 것이라고 다 품지 않는 것
……
물러 설 수 있는 것 보다 조금 더 물러서는 것
비울 수 있는 것 보다 조금 더 비우는 것

어딘가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선한 소들의 눈망울에서 들려오는 듯도 하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였다.
어쩌면 저 깊고 깊은 굼부리로부터 울려 나오고 있는지도 몰랐다.

올려다 본 하늘은 눈물처럼 맑았다.
이내 뚝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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