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남 칼럼] 숲에서 세상을 만나다 <1>

가을 숲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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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창 여니 찬 기운에 가슴 선뜻하다. 가을이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이제, 저마다 앞 다투어 떠난설레고 싱그러웠던 봄의 추억도,울울창창 깊고 무성했던 여름의 기억들도,그리워지겠지. 이제 떠날 것들은 모두 떠나고 새 봄, 새 삶,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기 위한 모진 시간들을 홀로 보내야겠지.

올 겨울은 참 길 듯도 하다. 능선 넘어온 차디 찬 바람 속을 빈가지로 서성이며길고 긴 수많은 밤들을 홀로 지내야 한다. 떨리고 두려운, 때로 영겁처럼 느껴지는 적막의 시간들 속에홀로 머물러야 한다. 새로운 삶을 기다리며 지나온 것들을 떨어내는 이 가을 아침,떠나보낼 것들에 대한 상념이 참으로 많기도 하구나. 그리도 고요히 머물며 흔적 없이 살려고 하였건만정 나누고 정든 것이 어찌 이리 많단 말이냐.

하기야 그 모든 것이 저마다의 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 무엇을 말하고 탓할 것인가. 바람 참 선선하다. 살아가는 날들, 이 바람처럼 선선했으면 좋겠다. 떠나보낼 것은 이리 많은데, 거피 향은 어찌 이리 그윽하고 맛은 어찌 이리 좋단 말인가.잠시 머물었던 이 숲의 자리가 그립다. 거기 가을이 있었다.

 
 

가을 숲은 겨울을 준비한다. 모진 겨울을 무사히 나기 위한 준비이다. 생명을 보존하여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다. 가을 되면, 여름 내내 푸름을 뽐내던 무성했던 나뭇잎들은 후드득 떨어져 낙엽이 된다. 산길을 덮는다. 나뭇가지에는 잎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드문드문 달린 나뭇잎 사이로 창백할 정도로 맑기만 한 하늘이 보인다.

산길을 덮은 낙엽들은 겨울 숲의 찬바람으로부터 땅의 온기를 지켜낸다. 낙엽으로 덮인 땅 속은 따뜻하다. 온실과 같다. 그 따뜻함으로 인해 수많은 생명들이 모진 겨울을 견디어 낸다. 겨울 숲의 살 에는 찬바람에도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고 생명을 다한 나뭇잎들이 다른 생명들의 삶을 지켜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인해 숲은 보존된다. 죽어서도 다른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나뭇잎은 제 생명을 잃은 후에도 사랑을 거두지 않는다. 이것이 나뭇잎의 삶이다. 숲의 사랑이다. 가을 숲의 마음이다.

이런 사랑, 이런 마음 없이 어찌 모진 겨울을 견뎌낼 수 있으랴.
이런 사랑, 이런 마음 없이 어찌 모질고 혹독한 이 시대를 견뎌낼 수 있으랴.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숲만이 생명력 충만한 봄을 맞을 수 있다. 혹독한 겨울은 더욱 풍성한 봄을 약속한다. 겨울 모질고 혹독할수록 풍성한 봄이 가까운 것이다. 혹독하리만치 춥고 매서운 겨울은 충만한 봄을 약속하는 은총이기도 하다. 
 
오기 무섭게 깊어가는 가을의 길목에 서서 모질고 혹독한 이 시대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본다. 겨울공화국이다.

이 겨울 지나면 봄이 온단다.
이 겨울 지나면 봄이 온단다.
이렇게 읊조리며 가을 숲을 걷는다.
낙엽 떨어진 빈 의자에 앉아 가을 깊어가는 것을 바라본다.

/최창남 (사) 백두대간 하늘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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