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동민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소피스트 저널리즘과 정명(正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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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 인류의 조상들은 야만의 초기부터 언어를 사용하여 말을 하기 시작했다. 『고대사회』의 저자 모오간(Lewis H. Morgan)은 고대사회를 야먄, 미개, 문명의 단계로 구분하면서 야만의 낮은(유년기) 단계에서부터 분절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수렵과 채취를 하는 과정에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초보적인 언어를 사용하게 되고, 그 결과 진화의 과정에서 뇌의 크기는 세배로 커졌다. 뇌의 용량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언어 사용 능력을 제고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미개의 높은 단계에서 문자를 만들어내며 문명의 단계로 이행하게 된다.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먼저 사물에 이름을 붙여 사용함으로써 다른 사물과 구별하여 인식을 공유하게 된다. 나아가서 사회적 또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서도 이름을 붙이게 되면 그 언어의 지배를 받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한다.

자로가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모셔 정치를 하게 된다면, 무슨 일부터 하시겠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공자는 "반드시 이름부터 바로잡을 것이다." 라고 이르면서 이렇게 그 까닭을 설명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흥하지 않고, 예악이 흥하지 않으면 형벌이 타당치 못하게 된다. 형벌이 타당치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군자는 필히 말이 통하는 이름을 가져야 하고, 말은 반드시 행동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군자가 말을 하는데 어찌 구차할 수 있으랴!(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故君子名之必可言也, 言之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己矣!)"

정치인들의 언어 사용 및 어휘 구사가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생활을 좌우하게 된다는 얘기다. 정치의 영역에서 이름이 바르지 않은(名不正)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을사조약, 한일합방, 문화정치, 민족지, 반탁운동, 6·25, 군사혁명, 한국적 민주주의, 정의사회 구현, 사회정화위원회, 보통사람, 구국의 결단(3당 합당), 세계화, 탈규제, 민영화, 자유주의 등등.

이명박 정부에서만 해도 이름이 바르지 않음으로 해서 빚어지는 혼란은 어지러울 지경이다. 경제 살리기, 경제대통령, 잃어버린 10년, 4대강 살리기, 녹색성장, 천안함 폭침, 아덴만의 영웅, 보편적 복지, 종북주의 등 현실을 호도하는 어휘 구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 박근혜는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어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데 성공한 후 사이비 경제민주화와 '내가 꿈꾸는 나라'의 이름으로 다시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을 더욱 더 궁색하게 만드는 구상을 하고 있다.

노자는 "도를 도라고 하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요, 이름을 이름이라 하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라고 했다. 도에 대해 말로써 이러쿵 저러쿵 씨부렁거리는 것은 도가 아니고, 이름 지어진 것에 갇혀 씨부렁거리는 것도 이름이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서 상(常)이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심화되어가는 변화의 항상성(恒常性)으로서, 비상명(非常名)이란 사물과 현상이 말과 이름 따위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권력자나 전문가연하는 사람들이 시비를 가리고 이름을 지으면 그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들을 언어의 감옥 속에 가두는 핵심적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 바로 저널리즘이다. 신문과 방송 등 전통적인 저널리즘은 바르지 않은 이름을 바로잡으려 하기는커녕 바르지 않은 이름의 생산자요 확산자(였)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간은 사물이나 현상을 지각하는 수준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견해가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으므로 모든 사람이 척도가 된다는 주장이다. 극단적인 상대주의다. 그래서 소피스트들은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레토릭으로 업을 삼았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화려한 말과 어휘로써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는 궤변론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 저널리즘은 정명(正名)의 소임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 궤변으로써 왜곡된 여론을 제조해내는 소피스트 저널리즘이다. 하여 민생정치의 출발은 소피스트 저널리즘을 극복하는 '정명'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의 지혜를 터득하여 정치인과 사이비언론의 궤변적 '명가명'을 가려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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