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동민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선거, 유권자, 그리고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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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감성이나 욕망과 같은 비합리적 요소를 이성이 지배함으로써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성적 인간의 범주에 노예들은 배제했으며, 부자도 극빈자도 아닌 적당한 재산을 소유한 중산층에 속한 인간들의 이성만을 신뢰했다.

이성에 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이성이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다면서 보다 확실한 신뢰를 표현했지만 역시 계급적 한계를 초월하지는 못했다. 과연 인간은 이성이 감성을 지배하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이성적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인가?

적어도 미디어와 관련해서 살펴보면,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성이 지배한다면 독자들이 조중동과 같은 사이비언론을 선호하고 따를 수는 없으며, 시청자들이 교양 다큐멘터리나 토론 프로그램을 외면하고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에 탐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조중동이 신문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상태에서 허위, 날조, 왜곡보도가 먹히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악수하면 손이 붓는다고 무슨 희귀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오른 손에 붕대를 감고 유권자들을 대하는 장면을 TV에서 보고는 감동한다.

이번 총선은 MB정권의 방송장악이 가져다 준 승리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좌클릭한 방송만 장악하면 만사형통 장기집권을 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온갖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한 MB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한 선거였다. 민주통합당 공천실패나 소위 김용민 '막말파동' 따위는 사실 주요 변수가 아니었다.

공천실패는 민주당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도 민주당의 추잡한 공천과정을 보면서 개탄했지만, 김형태-문대성-하태경으로 상징되는 새누리당의 후안무치 공천과 비교하랴? 정권에 의해 장악된 방송은 민간인 불법사찰을 보도하지 않았으며, 새누리당의 공천은 개혁공천으로 미화했다. 그리고 조중동이 날조한 '막말파동'은 매일매일 부각시키며 확성기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런 편파보도가 강원도와 충청도의 촌로들을 비롯한 60~70대 노년층을 자극했을 것이다.

우선 조중동과 방송이 이성적 인간이 운영하는 미디어라고 볼 수 없으며, 이들이 독자와 시청자를 이성적 존재로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KBS 김인규 사장은 총선 다음날이자 파업 38일째를 맞은 12일 전 사원에게 보낸 사내메일을 통해 “본부노조(새노조)의 파업으로 어느 때보다 인력이 부족한 상태인데도 공정한 선거방송을 차질 없이 치러낼 수 있었다”면서 “총선을 앞두고 특정 정당에 노골적으로 편향된 모습을 보임으로써 공영방송인의 자세를 스스로 저버린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유감스러운 행태였다”고 주장했다. 철면피가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있는가? 이게 이성적 판단을 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인가? 시청자의 존재를 얼마나 얕잡아보는 발상인가?

조중동의 시대는 끝난 줄 알았다. SNS와 인터넷 미디어가 전통적 미디어를 밀어내고 대세로 굳히는 줄 알았다. 지난 2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선거 전날까지 SNS 선거운동이 허용되어 기대도 컸다. 그러나 아니었다. 작년 서울시장 선거는 착시현상이었다. 조중동이 그토록 박원순 후보를 흠집내고 방송이 나경원 후보를 감싸주었어도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보고 조중동시대의 종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아니었다.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다. SNS의 영향력은 아직 서울에만 해당된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SNS는 아직 서울과 대도시에 한정돼 있다. 2010년 9월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 진흥원의 "2010년 인터넷 이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민의 77.8%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으며, 그중 65.7%가 SNS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별로 보면 사정이 다르다. 최근 통계로 수도권 이용자는 51.5%인 데 반해 강원도 3.6%, 전라도 8.65%, 충청도 8.85%, 경상도 26.5%로 격차가 크다. 수도권 통계도 서울과 경기남부가 높고 경기북부는 낮을 것이다. 이 통계가 선거결과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조중동과 방송의 편파보도에 영향을 받는 지역과 계층에서 '막말파문'이 '정권심판론'을 압도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중동시대가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이용 인구와 SNS 사용자는 조만간 100%에 육박할 것이고, 정권이 교체되어 방송이 다시 독립성을 확보하게 되면 확성기를 잃은 조중동의 영향력은 급락할 것이다. 언론이 바로 서야 인간의 이성이 감성과 욕구를 지배하게 되고 나라가 바로 선다. 인간이 미디어의 지배를 받을 수는 없다. 언론을 바로 세우기 위한 이성의 되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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