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적자’를 이유로 공무원연금을 비롯해 사학 연금, 군인 연금 등 3대 직역 연금을 대폭 손질할 것을 여러 차례 표명한 가운데 민간 보험사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지난 25일과 26일 이틀 동안 충북 제천의 청풍 리조트 힐튼 호텔에서는 ‘한국연금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한국연금학회의 2014년 정기 춘계 학술대회인 이 학술대회는 국민연금연구원과 보험연구원이 공동주최했다. 언뜻 보아서는 연금을 주제로 관련 학자들과 연구원들의 연구 성과물을 함께 논의하며 탐구하는 자리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다른 의도가 보인다.
이 학술대회는 미래에셋은퇴연구소의 후원을 받아 개최됐다. 발표자와 토론자들 다수가 삼성생명, KDB생명, 미래에셋, 제로인 등의 민간보험사 소속이다. 무엇보다 대회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이 학술대회가 과연 ‘순수한’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 위한 모임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학술대회’ 외피 쓰고 민간보험사의 사적연금 확대 논리 뒷받침
‘공적연금의 현안과제 발전 방안’(석재은, 한림대), ‘사적연금제도의 사회안전망 역할과 개선방안’(류건식, 보험연구원), ‘호주와 영국의 퇴직연금과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정책방향’(김원식, 건국대)이라는 학술적인 제목의 발표물 외에 ‘퇴직연금 실적배당상품 다면 진단’(김성일, 제로인퇴직연금연구소) ‘DC형 퇴직연금 가입자의 실적배당형 가입성향 분석 및 시사점’(박준범, 삼성생명은퇴연구소), ‘출생신고자료를 활용한 출생방정식도출과 적용방안 연구’(오진호, 통계개발원), ‘변동성이 인출단계의 자산배분에 미치는 영향’(권기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등 연금 관련 보험 상품 개발을 뒷받침하는 내용의 발표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술적인 논문의 경우도 공적 연금이 아니라 사적 연금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 역할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적보장과의 역할 분담 필요”(석재은, 8쪽) “급변하는 제도에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퇴직연금과 관련된 다양한 금융상품을 개발하여 전체 금융산업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김원식, 79쪽) “사적 연금제도 개선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 절실(류건식, 49쪽) 등.
공적 연금을 공격하기 위해 의도적인 조사를 실시한 것도 보인다. 석재은 교수의 발표자료를 살펴보면 한림대가 실시한 ‘2014 세대공생 연구프로젝트 전국 세대별 인식조사’ 문항으로 “공무원, 군인, 교원 등은 일반 국민보다 연금을 더 많이 받아야 하(는가)”는 문항이 있다. 1,214명이 응답한 이 설문 문항의 답변은 ①전혀 그렇지 않다, 19.6%, ②그렇지 않다, 33.8%로 합산됐다.
공무원연금 공격 위해 ‘악의적’ 설문 조사 실시
토론회에 참석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이정수 정책부장은 이 문항에 대해 “악의적이고 선동적인 설문이다. 공무원과 군인, 교원 등의 직역 연금과 국민 연금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이 부장은 공무원연금과 국민 연금의 차이점에 대해 조목조목 따졌다.
사적연금과 소득재분배 효과가 있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의 수익비를 비교해 보면 사적연금이 0.8배, 국민연금이 1.3~1.8배 이상, 공무원 연금이 2.3배이다. 겸직 금지 등의 여러 신분상 제약은 제외하고라도 공무원은 대졸 기준 100인 이상 사업장의 69%에 불과한 임금, 기초노령연금 제외,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퇴직금.
“이런 조건에서 기여금 대비 2.3배의 수익비가 그렇게 많다고 볼 수 있는가”라고 이 부장은 반문했다.
이 부장은 이 학술대회에 대해 “‘학술대회’라는 외피를 입고 개최되었지만 이 대회는 공적 연금 붕괴를 통해 이를 개인(사적) 연금 시장을 흡수하고 노동자들의 퇴직 일시금의 지급 제한과 퇴직연금 가입 의무화를 통해 사적 연금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민간 보험업계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공무원노조는 정부의 ‘직역 연금 대폭 손질’에 대해 공무원연금을 비롯한 공적 연금을 지키기 위한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것임을 이미 여러 차례 천명했다.
이충재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사적 연금시장의 확대는 공무원연금뿐 아니라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붕괴를 의미한다. 공무원노조는 이를 선동하고 획책하는 정부와 언론 소위 전문가들의 행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 노후의 생존권을 지키는 차원에서라도 공무원 연금 투쟁을 강력하게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공무원노조는 현재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직역 연금과 국민연금을 포괄하는 공동투쟁본부의 결성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