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가 종편(종합편성채널)의 대항마로 부상하는 것 같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종편을 제압(?)하면서 존재감과 힘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한국일보는 4월 23일자 기사 에서 “나꼼수의 뒤를 이어 우후죽순 등장한 진보 진영의 정치 팟캐스트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보수 종편’에 대응하는 진보진영의 미디어로 자리를 잡아가는
경향신문은 3월 17일부터 라는 타이틀을 걸고 “포기하지 않으면 미궁은 없다”는 신념으로 미제사건들을 추적하는 연재를 하고 있다.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이른바 ‘태완이법’이 2015년 8월부터 시행되면서 경찰청이 미제사건 전담팀을 정식 발족시킨 데 따른 기획이다. 응당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다.이 연재기사는 ‘동해 학습
최근 타계한 움베르코 에코의 에는 중세시대 한 시인의 시가 인용되어 있다. “이 세상 만물은 책이며 그림이며 또 거울이거니” 또 윌리엄 수도사는 “자연이라는 위대한 책을 읽어내는 방법에 정통했다”고도 한다.그렇다. ‘스스로 그러한’ 존재인 자연(自然)으로서의 우주는 엄청난 양의 메시지를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갈릴레오는 이렇게 표현했다. “철
나락으로 떨어진 허울뿐인 공영방송 MBC의 ‘막장 드라마’가 갈수록 가관이다.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입수해 공개한 녹취록이 MBC의 치부를 드러낸 것이다.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이 서울 종로에 있는 한 식당에서 김재철 전 MBC 사장의 변호사와 일부 사내 인사 등과 함께 극우 성향의 인터넷 매체 폴리뷰의 편집국장 등을 만나 했다는 얘기다.“박성제
미디어의 사전적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의사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다. 언론학에서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수단(means)’ 정도로 정의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의미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매개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커뮤니케이션이 꼭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사유(思惟) 활동도 엄연히 커뮤니케이션이다. 따라서 자아와의
그림(회화)을 포함하여 미술은 원래 미디어였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역사를 기록한 미술사가들은 미술의 역사를 주로 예술의 관점에서 기록했고, 언론사(言論史) 연구자들은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의 역사에서 미술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차차 얘기하기로 하고, 우선 피카소에게 미술이 표현과 기록의 미디어로서 수행하는 방식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유신체제를 겪었고 노무현을 지지했던 50대는 왜 박근혜에 몰표를 주었을까?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에게 50대 하우스 푸어 대책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게 원인일까?아니라고 본다. 대한민국은 경상도 공화국이다. 경상도가 지배하는 공화국이다. 박정희 이후 1990년까지는 대구·경북(TK) 공화국이었는데,
현생 인류의 조상들은 야만의 초기부터 언어를 사용하여 말을 하기 시작했다. 『고대사회』의 저자 모오간(Lewis H. Morgan)은 고대사회를 야먄, 미개, 문명의 단계로 구분하면서 야만의 낮은(유년기) 단계에서부터 분절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공동생활을 하면서 수렵과 채취를 하는 과정에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초보적인 언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감성이나 욕망과 같은 비합리적 요소를 이성이 지배함으로써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성적 인간의 범주에 노예들은 배제했으며, 부자도 극빈자도 아닌 적당한 재산을 소유한 중산층에 속한 인간들의 이성만을 신뢰했다.이성에 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은 아리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