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2월 1일, 일본 정부는 세계유산위원회에 (이하 2019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갱신보고서는 2018년 제42차 총회에서 세계유산위원회가 일본 정부에게 2017년도 (이하 2017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내린 요구였다. 2017보고서에는 산업혁명 유산에 대한 일본 정부의 해석 전략이 들어 있었다.
라는 책이 출판되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이 책이 주장하는 요지는 이렇다. 한국은 거짓말쟁이의 나라다. 일제시기 일본군위안부를 비롯한 군사동원과 노동력동원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간 것이며, 강제노동이나 성노예도 없었으며 민족차별도 없었다. 모두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한일의 연구자들이 진실을 왜곡한 것이며 이들의 거짓말에 한국
역사칼럼란에 난데없이 경제이야기를 하자니 다소 어색하다. 그러나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만 역사가 아니라 현실의 살아있는 사건도 역사의 한 부분 아닌가라는 그런 억지를 부려서라도 이 지면을 빌어 말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 탓이 크다. 이 욕망에는 한국 경제학계와 언론에 대한 불만과 안타까움이 깔려 있다. 필자가 다음에 소개할 OECD의 보고서는 그 메시지
1948년 봄, 어느 날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제주의 연리 마을에 무장한 경찰들이 나타났다. 간밤에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산사람들이 마을로 내려왔다가 싸움이 벌어졌다. 다음 날 아침 경찰들이 민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소년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아들, 어디 갔어’라고 할아버지를 다그쳤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징용 가서 돌아오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1960년 4월 혁명이 있은 지 6개월 후인 10월 11일, ‘4월 혁명 부상자동지회’ 회원들이 목발에 수륜차를 굴리며 민의원 의사당에 난입하여 의사당 단상을 점령하였다. 의사당이 시민들에 의해 점령당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민주당의 신·구파 의원들이 데모대가 지켜보는 앞에서 정쟁을 지양하고 혁명입법을 하루빨리 완수하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10월 30일, 한국대법원은 마침내 긴 세월을 끌었던 사건에 마침표를 찍었다. 신일철주금이라는 일본의 글로벌회사에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강제동원·강제노동의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1997년 일본에서 제소한 때로부터 21년, 다시 2005년 한국에서 제소한 지 13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 역사의 눈으로 보면 1945년 12월 재일조선
4.27 판문점선언 이후 한반도에는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그동안 38선을 경계로 한층 고조되었던 군사적․정치적 갈등을 진정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동북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변화의 바람이다. 현란할 정도로 전개되고 있는 남, 북, 미, 중 간의 외교전의 흐름을 볼 때, 이 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양상을 띠게 될 것 같다. 물론
유난히도 무더운 올 여름, 7월 18일 오후 2시 30분 일본 참의원의원회관 제1면회실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회견장에서 배포된 유인물의 제목은 “외국국적 BC급전범자 문제, 당사자가 살아 있는 동안 ‘특정연합국재판피구금자특별급부금지급법안’의 의원입법 실현을 호소합니다.”였다. 기자회견장에 올해 93세의 이학래 씨가 나와 있었다. ‘한국인 전 BC급 전범자
지난 1년 간 역사교과서 문제, 과거사 문제, 3.1운동100주년 기념사업 문제 등으로 여러 부처의 관료들과 이런 저런 회의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당사자들이 알면 불편하고 불쾌하게 들리겠지만 그 만남에서 필자는 자주 무력감과 허탈감을 느꼈다.필자도 10여 년 전 3년가량 ‘짝퉁’ 공무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돌이켜 보면 당시는 매우 활기가 찼던 것 같다
내년인 2019년은 3.1운동이 일어나고, 그 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민관 공동으로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기념사업의 방향과 방법 등에 대해 연구용역을 공모한 바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이 연구사업을 맡게 되었고, 필자도 연구책임자로서 참여하게 되었다. 연구팀이 보고서